철강업계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이기를 맞고 있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제철소의 고로(용광로)에서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됐다고 해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잇따라 조업 정지 처분을 받을 내우(內憂)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충남도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고로 1기에 대해 열흘간 조업 정지 처분을 내렸다. 경북도와 전남도도 최근 제철소의 고로 안전밸브인 브리더를 통해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된다며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고로 1기에 대해 각각 열흘 씩 조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청문 절차가 진행 중이다.

당장 포항과 광양, 당진의 제철소들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나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우려돼 포항시 등 제철소 소재 자치단체는 물론 상공회의소, 심지어 제철소 노조까지 나서서 조업 중지 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심각한 지경에 이른 11일 국무조정실이 환경부와 산업부 실무자들을 불러 뒤늦게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와 환경단체의 눈치를 보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마지못해 사후약방문 겨의 대응에 나선 것이다.

철강협회는 당진제철소 2고로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린 데 대해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고로에서 배출되는 잔류가스는 2000cc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 시 10여 일간 배출하는 양에 해당 된다”는 설명이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소들이 이 같은 양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 때문에 문을 닫게 생긴 것이다. 현재 고로 브리더에서 배출되는 잔류가스에 실제 대기오염 물질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 지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환경단체들의 입김에 못이긴 환경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에 뒷짐을 지고 있었던 셈이다.

고로 브리더의 개폐는 조업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한다. 철강업계는 고로 조업을 정지하면 쇳물을 재생산 하는데 3~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열흘 조업 중단이 아니라 수 개월 동안 제철소 조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철소 가동 12개 고로의 조업을 정지할 경우 최고 10조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철강산업은 물론 관련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철강 수요산업들에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노총 포스코노조는 11일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북도와 전남도의 행정처분 계획을 철회하고, 환경단체는 도를 넘는 월권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포스코 죽이기를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가 나서서 이렇게 호소할 정도다. 산업 현장의 오염 물질 배출과 안전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지만 과도한 행정처분을 내려 기업활동 자체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철강업계는 외환(外患)에도 속수무책이다. 세계 1위 스테인리스스틸 원자재 제조사인 중국 청산강철이 부산에 상륙해 양산 체제를 갖춘다고 한다. 청산철강이 국내 기업인 G스틸과 각각 지분 50%를 투자, 부산에 합작공장을 지어 연간 60만t의 냉연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중국 청산강철은 세계 스테인리스스틸 생산 시장의 ‘황소개구리’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다.

철강협회는 청산강철의 국내 진출이 미중(美中) 무역 분쟁 속 열연제품 판로 축소에 대응한 우회수출 거점이자 새로운 판매처 확보 의도로 보고 있다. 청산강철의 생산 거점이 현실화 할 경우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업계의 고사는 물론 실업률 상승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이 클 것이란 지적이다. 또 청산철강의 자국 내는 물론 인도내시아 산 소재를 가공한 냉연제품을 한국산으로 세탁해 수출하면 한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서 무역 분쟁의 빌미가 될 가능성도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신규 투자에 따른 고용창출(500명) 보다 기존 국내 동종업계 라인의 가동 중단으로 고용 인원 5000명의 실직 사태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포항 철강공단에는 ‘청산강철 500명 고용, 한국 직원 5000명이 죽는다’는 현수막이 내 걸렸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산강철의 부산 상륙은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포스코 경제가 사실상 포항 경제나 다름 없는 포항시가 나섰다. 10일 포항시와 포항상공회의소, 포항철강관리공단 등 경제계와 지역 노동계 대표들이 포항시청 브리핑 룸에서 부산시의 청산철강 국내 투자유치를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낸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생산 공룡 청산강철의 한국 진출은 단순히 제품의 과잉 공급으로 국내 철강제조업의 생태계를 위협할 뿐 아니라 미중 무역분쟁에 한국이 휩쓸리게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정부는 제철소 대기오염물질 배출 관 관련한 조업 정지 문제처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산업 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청산철강의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앞장서서 중재하고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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