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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43. 군위 봉강서원
[서원] 43. 군위 봉강서원
  • 이만식 기자
  • 승인 2019년 06월 12일 17시 5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6월 13일 목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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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으로 백성들의 겨울을 따듯하게, 삼우당 문익점 선생 '애민정신' 깃든 곳
군위군 우보면 ‘봉강서원’ 전경
군위군 우보면 봉강서원(鳳岡書院)은 1461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선생의 장손(長孫) 이며, 의성현령(義城縣令) 이던 문승노(文丞魯)는 선조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멀리 산청까지 갈 수가 없었기에 조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만천동(사람들이 ‘봉강서원’이라 불렀다고 전함)을 창건하여 봉안해 왔으나 난화(亂火)로 2차에 걸쳐 소실(燒失)되었다.
현판
승노(丞魯) 공께서 의성 현감으로 계실 때 금성면 제오리에서 목화를 시험 재배해 토질이 적합함을 알고 목화재배를 권장해 의성군이 목화의 주산지가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군위군 우보면 달산동 남평문씨(南平文氏)일가들이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 선조의 ‘목면유전포비’를 건립해 선조를 추모하였으며, 현재는 의성군에서 비석 주변의 1000㎡에 목화를 심고 사적비를 관리하고 있다.
충선공삼우당선생유허비
1861년 신유(辛酉)에 경북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 포상(圃上)에 서원명(書院名)을 봉강서원(鳳岡書院)으로 하고 이건(移建)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

1958년 후손들의 집성촌인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 1355번지 현재 터에 일가들의 성금 등으로 신설인 경현사 와 삼문, 상의문 등을 중수하여 봉강서원(鳳岡書院)을 이루고 있다.

봉강서원 운영진으로는 전임회장 병만(炳晩) 씨와 총무 종구(鍾龜) 씨가 20년간 봉강서원의 보존과 유지에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어 2015년 새로운 운영진에 회장 종구(鍾龜) 씨와 총무 태기(泰基) 씨가 선임돼 유지를 받들고 있다.
봉강서원 경원사에서지난 4월 20일 오전 11시남평문씨 문중 등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현 추모 향사가 열렸다.
△봉강서원 매년 선현 추모 향사 봉행.

군위군 우보면에 있는 봉강서원은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선현 추모 향사가 열린다.

올해에도 지난 4월 20일 오전 11시 봉강서원에서 남평문씨 문중 등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경현사
상의문
‘봉강서원’은 1861년에 설립됐으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 1958년에 남평문씨 후손들이 경현사, 삼문, 상의문 등 5동을 중수했다.

그 후 남평문씨 문중에서는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목화를 전래한 고려 시대의 문신 문익점, 물레를 고안한 문래, 직조법을 발명한 문영 선생에 대해 향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

-문익점 선생은 고려말 대 유학자로 성리학(性理學)을 창명(倡明)하고 원나라에 사신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최초로 목화씨를 가지고 돌아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성공했다.

백성들의 의류 혁신과 생활에 크게 이바지했다.

-문 래는 선생의 손자로 벼슬은 좌찬성에 이르고 천문, 지리, 음양, 산수, 척도 등에 밝았으며 물래를 만들었다.

물래란 말은 문 래 에서 유래된 것이다. 목면 이용에 크게 공헌했다.

-문 영은 선생의 손자요 문 래와는 형제지간이며, 베틀을 만들어 목면포 즉 무명베를 최초로 짜게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문영베라 하였으나 이것이 변하여 무명베가 되었다.
충선공 문익점
△우리 얼, 문화유산 충절의 교육장.

봉강서원(鳳岡書院)은 학문을 강론하고 선대 충선공 문익점, 정혜공 문래, 양민공 문영, 충절의 제를 모시는 곳이다.

봉강서원의 운영을 맡은 문태기 총무는 “서원의 순수한 뜻을 현세대의 고유재산으로 보존하고 유지해 후손들에게는 긍지를 심어주고 지역민들에게는 소공원화해 충절의 교육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신임 총무로서의 소임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혁(沿革)에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과 몇 차례 소실, 그리고 문익점 선생의 유허비수와 비각건립이 있던 자리에 1958년 6.25 사변 후 어려운 시기에 선대의 충절을 모시고자 하는 숭고한 뜻과 후학들의 교육을 위해서 십시일반 갹출해 건립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일화가 있다.

터를 내어주고,

산주는 벌목을 허락하고,

목수들을 집집 마다 돌아가면서 숙식과 참을 내어주고,

노동력 제공과 타작할 때는 기다렸다가 곡물을 받아 왔다니 눈물겨운 이야기들입니다.

또한 서원 개원하던 날 유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봉강서원 문태기(64· 36대손) 총무
문태기 총무는 “이제는 한 문중의 자산에서 문화유산으로 남아야 합니다.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산업화로 외면과 무관심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뜻있는 후손 몇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질곡의 삶과 민 초의 혼이 깃든 곳. 이곳에 토담과 서원을 보수하고 넓은 마당을 공원화해 충절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향사 제례 과정을 정립해 충·효를 가꾸는 장이 되어 문익점 선대를 알리고 지역에 오면 꼭 들러 보는 곳으로 발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찌 화려함만이 문화유산이겠습니까. 서민의 애환과 선대의 얼이 서린 곳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문화유산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봉강서원
△봉강서원(鳳岡書院) 공원 만들기.

봉강서원은 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아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후손들은 정성을 모아서 소중한 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봉강서원 공원화 사업에 총 4억 원 정도의 예산을 계획하고 있으며, 군위군으로부터 우선 조경사업비 5000만 원 확보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조경사업을 마친 후 문익점 선생의 목화씨를 가져온 훌륭한 뜻과 목화를 심어 아름다운 봉강서원의 전경을 군위군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정혜공 문 래
양민공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