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북포럼] 새롭게 다가오는 자강불식(自彊不息)
[새경북포럼] 새롭게 다가오는 자강불식(自彊不息)
  •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19년 06월 17일 18시 0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6월 18일 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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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나의 중학교 3학년 시절. 교실에 걸렸던 급훈이 자주 생각난다. ‘자강불식(自彊不息)’이었다.

’자강불식’은 그 당시 어렵고 생소해서 눈여겨보았었기에 ‘강(彊)’자와 ‘강(强)’자가 오버랩 되면서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교직생활을 하면서 해마다 고심했지만 학생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켜줄 만한 급훈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인생 칠십 중반에 들어서면서 자강불식이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 까닭은 무엇인가.

춘하추동(春夏秋冬)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계절,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고, 뜨거운 여름이 극에 달하면 서늘한 바람을 안고 가을이 온다. 쉼 없이 돌아가는 자연이다. 정말 불식(不息)이다. 냇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지구는 쉼 없이 돌고 또 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돌지 않는 지구에는 밤낮이 없다. 쉼 없이 제 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만물의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자강불식은 주역(周易) 64괘(卦) 중 첫 괘인 ‘건괘(乾卦)’에 ‘하늘의 운행은 건장하니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강건하여 쉼이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나오는 말이다.

우리 인간도 저 자연의 순환을 본받아서 한시도 쉬지 않고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나 국가나 힘들고 어려울 때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계속 연마해야 강해질 수 있다. 무쇠도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고, 담금질을 반복한 끝에 강철이 된다고 한다.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아야 강해질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시어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인생살이에서 다가오는 많은 것들을 맨몸으로 감당하다 보면 힘에 겨워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떠올리는 구절.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는 말. 오늘의 시련은 모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들이다. 그리고 그 시련들은 나약했던 나를 더욱 단련시켜준다.

다가오는 어려움과 난관들을 비관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좋은 훈련의 기회로 삼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것도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자강불식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덮쳐오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기력으로 나약해진 사람, 반항적 기질로 좌충우돌하는 사람에다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까지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

끊임없는 변화와 강한 단련이 우주의 질서요, 생성과 창조의 이치일진대, 그리고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일어설 수 있는 의지를 길러야 할 것이다.

생명경시의 사상은 자유는 누리되 책임은 짊어질 줄 모르는 나약함이요, 결국은 무기력한 사회를 만들고, 무조건적인 반항과 거부의 풍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소위 정치 지도자라 불리면서도 비방 일색의 언동으로 살기 싫은 세상을 부각시키는 사람들. 칭찬이나 격려는 아예 배울 생각이 없고 예의나 교양 같은 것과는 담을 쌓기로 결정한 안사들에 일부 언론까지 거들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뜻도 모르고 쳐다보았던 ‘자강불식’의 급훈이 그리워진다. 벌어진 사태는 수습하고, 닥쳐오는 난관은 온몸으로 부딪쳐 극복하면서 노익장의 삶을 열심히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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