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캐비어포퓰리즘과 최저임금
[삼촌설] 캐비어포퓰리즘과 최저임금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06월 20일 17시 1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6월 21일 금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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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소련은 경제 침체로 정부 재정이 바닥났다. 대숙청으로 정적들이 제거되자 스탈린은 자신의 통치력 덕분에 사회주의가 정착되고 국가가 번영을 누리게 됐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 농민과 노동자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비재 시장을 정치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그 일환으로 캐비어(caviar·철감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음식) 선심 정책인 ‘캐비어포퓰리즘’을 펼쳤다.

재정 러시아 시대 진귀한 음식으로 황실과 귀족 계층에서만 먹든 캐비어를 서민들에게도 공급기로 했다. ‘캐비어포퓰리즘’은 국민들에게 모두가 캐비어를 먹을 수 있는 행복한 국가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꿈에 도취하게 만들었다. 100g, 250g 최대 500g을 넘지 않게 소량으로 판매하도록 규정, 서민 누구나 먹도록 해 명절 때면 집집 마다 식탁에 캐비어가 오를 정도였다.

스탈린은 캐비어 효과를 부추기기 위해 캐비어와 찰떡궁합인 샴페인 보급을 독려했다. 그동안 부르주아계급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샴페인이 스탈린의 말 한마디로 폐허처럼 버려졌던 포도 농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캐비어와 샴페인은 어느덧 소련 국민에게 행복의 상징이 됐다. 당시 소련산 캐비어는 수출 가격이 꽤 높아 바닥난 국고를 보충하기 위해선 외화벌이의 좋은 품목이었지만 대부분의 캐비어를 내수로 돌렸다.

스탈린은 외교에서도 ‘캐비어 외교’를 십분 활용했다. 캐비어와 샴페인이 차려진 식탁은 상대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캐비어 효과는 외교 담판에서 승기로 이어졌다.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독일의 패전과 전후 처리 등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크림반도 얄타에서 미·영·소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처칠의 개인비서로 정상회담에 참여한 존 마틴은 “캐비어와 샴페인이 마치 기관총이 불을 뿜는 것처럼 끊임없이 올라왔다”고 회상했다.

경제정책 실패의 실상을 가리기 위한 ‘캐비어포퓰리즘’ 장막 뒤에는 수천만 명이 굶어 죽고, 수백만 명이 처형됐다. 19년 만의 최악 실업률로 국민들에게 고용참사 고통을 안겨 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포퓰리즘 경제정책이 ‘캐비어포퓰리즘’ 참상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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