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인구 감소·연금수급연령 상향에 '발등에 불'
재고용 기업에 인센티브 방안…'노동유연성' 선결과제

급속한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경제성장률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정년폐지까지 검토하고 있다.

다음달 초 고령자 재고용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내놓은 뒤 단계적으로 정년연장을 도입하는 데 이어 정년폐지 수순까지 밟는 3단계 전략을 고민 중이다. 다만 기업의 부담을 덜고 청년층 고용과 상충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령자 시간제 근무와 임금 조정 등 노동 유연성 확보 방안이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고령화 대책과 관련해 “단기로는 정년 후 재고용·고용유지, 중기는 정년연장, 장기는 정년폐지”라며 “(정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시동을 걸고 방향성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정년폐지 카드까지 고려하게 된 배경에는 급속한 고령화 진행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경제성장률 둔화 우려가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특별추계에 따르면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20∼2029년 연평균 33만 명, 2030∼2039년 연 평균 52만 명 감소할 전망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내년부터 65세에 도달해 고용시장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잠재성장률이 내년에 1.98%로 떨어지고 2028년까지 1%대에 머물 것이라는 학계의 경고도 나온 상황이다.

고령 인구를 고용시장에 더 붙잡아두려면 정년제도 손질이 불가피하다.

가장 먼저 손댈 수 있는 부분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고령자를 재고용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다음달 발표 예정인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발굴 과제에도 해당 내용이 담긴다.

정년 후 고령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과 감독 완화, 컨설팅 지원 등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선험국인 일본과 마찬가지로 재고용 시에는 임금과 근무조건을 낮출 수 있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라고 하면 세제 혜택, 감독 면제, 비용 일부 지원 등이 있을 수 있고 컨설팅까지 패키지로 지원할 수 있다”며 “정년이 지나도 임금과 직무를 조정해서 고령자의 숙련 기술을 활용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정년을 두지 않고 60세 이상 고령자를 기준고용률 이상 고용하면 기업에 분기마다 1인당 27만 원을 지급하는 고령자 고용지원금 제도가 있다.

이번 재고용 인센티브 제도는 정년제 적용 여부를 따지지 않으며 단순 노무보다는 경륜을 활용할 수 있는 직무를 중심으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장기 과제인 정년연장 및 폐지는 기업 부담 가중과 청년층 고용 위축 우려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마냥 미뤄놓을 수 없는 과제다.

당장 노년층의 소득 공백이 문제가 된다.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은 현재 62세지만, 2033년에는 65세로 상향조정된다.

수급개시연령이 계속 높아지는데 정년은 그대로면 고령층이 근로소득은 물론 연금소득도 없이 견뎌야 하는 기간이 점점 벌어진다.

조기노령연금 제도가 있지만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6%씩 연금액이 깎여 5년 일찍 받으면 30%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도 연금 전액을 수급할 수 있는 연령을 ‘정상 은퇴연령’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한국의 정상 은퇴연령이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년문제가 복잡한 것은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을 주는 연공서열식 보수체계 탓이 크다.

때문에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정년연장·폐지의 선결 조건으로 보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중장년 근로자가 근로시간과 임금, 직무조건 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해 긴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고용시장에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최근 국민경제자문회의지원단이 발주한 ‘은퇴세대 증가, 학령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변화 실태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점진적 은퇴’가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 은퇴연령을 전후해 노동을 줄여가며 시간제 방식으로 일하되 연금도 일부 수령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사업장은 인건비를 줄이며 자연스럽게 업무 승계작업을 할 수 있고 노동자는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어 노사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정년제 폐지지만, 현실적인 고민이 있으니 임금이나 고용조건 등을 함께 조정하면서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며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임금을 조정하는 다양한 형태의 퇴직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