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1000만 원 들여 새단장…투구·식기 유품 봉안식 가져

문경시 호계면 호계리 부림홍씨 선천공종중은 22일 선청공 홍인걸 선생이 조선시대 선조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66개 글자를 보관하는 어필각(御筆閣)을 중수하고, 투구와 식기 유품 봉안식을 가졌다.
문경시 호계면 호계리 부림홍씨 선천공종중(회장 홍진호)은 22일 오전10시30분 선천공(宣川公) 홍인걸(1581~1639) 선생이 조선시대 선조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66개 글자를 보관하는 어필각(御筆閣)을 중수하고, 투구와 식기 유품 봉안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고윤환 문경시장, 고우현 도의원, 김창기 문경시의회 부의장, 고영조 문경시민명륜학교장을 비롯한 유림단체장과 임원, 부림홍씨 후손, 마을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조선시대 명신 문광공 홍귀달(1438~1504) 대제학의 고손자(高孫子)인 선천공은 25세에 과거 무과 4등으로 급제했다. 당시 문과 공부를 하던 선천공은 임진왜란 후 무과를 장려하던 선조의 시책에 따라 무과에 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선천공이 문무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점을 선조임금이 눈여겨보고,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마음을 담아 직접 고전에 있는 좋은 글귀를 써 하사한 것이다.

어필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768~824)가 그 아들 부(符)에게 “모든 사람은 독서를 통해 얼마나 자신을 닦는가가 귀천(貴賤)의 지위가 결정된다”는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쓴 권학문(勸學文)의 일부다.

이날 특강을 한 홍우흠 영남대 명예교수는 “그대 젊은 무관 홍인걸은 충효의 가훈을 이어 문무를 겸비해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음을 알겠노라. 하지만 좌우에 시기와 질투의 눈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내 함부로 그대를 칭찬하거나 등용하지 못하고 우선 이 권학문으로 나의 깊은 뜻을 암시하노라 하는 뜻으로 어필을 하사했다”고 말했다.

홍진호 종중회장은 “선천공께서 돌아가시고 200년 지난 1838년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손됐으며, 130년 후인 1998년 사당을 중건하고, 이번에 1억1000만원을 들여 어필각을 새롭게 단장했다”고 말했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부림홍씨문중의 이 어필각은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것으로 어느 한 문중의 자랑이 아니라, 문경시, 더 나아가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새겨야 할 소중한 글”이라고 말했다.

이 어필각에는 선조의 어필이 정면 벽에 걸려 있으며, 선천공이 사용하던 투구와 식기 모형을 홍용락(방송인 겸 대학교수) 후손이 제작해 그 아래 상 위에 봉안했다.

본 유품은 1996년 문경옛길박물관에 기탁돼 있다.



양가각생자(兩家各生子) 두 집이 각각 아들을 두었는데

제해교상여(提孩巧相如) 어릴 때 기교는 서로 같았다네

소장취희희(少長聚嬉戱) 조금 자라 함께 모여 소꿉장난 할 때는

불수동대어(不殊同隊魚) 한 떼 물고기와 다르지 않았네

연지십이삼(年至十二三) 나이 열 두 셋에 이르니

두각초상소(頭角稍相疎) 두각을 나타냄이 서로 차이가 나네

이십점괴장(二十漸乖張) 20세가 되자 그 차이는 더욱 벌어져

청구영오거(淸溝映汚渠) 맑은 도랑과 시궁창처럼 달라지네

삼십골격성(三十骨格成) 30세에 이르러 인격이 완성되니

내일용일저(乃一龍一猪) 한 사람은 용과 같고 한 사람은 돼지 같네

비황등답거(飛黃騰踏去) 천마는 나는 듯 내달려

불능고섬여(不能顧蟾여) 두꺼비 같은 미물은 돌아볼 겨를도 없네

일위마전졸(一爲馬前卒) 그 중 한 사람은 한 사람의 마부가 되어

편배생충저(鞭背生蟲저) 채찍을 맞은 등에 구더기가 생기네(밑줄 네 글자는 어필에 없음)

황진호 기자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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