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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의 인문명리] 강호제현의 유래와 마조 도일과 석두 희천
[류동학의 인문명리] 강호제현의 유래와 마조 도일과 석두 희천
  •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 승인 2019년 06월 24일 15시 3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6월 25일 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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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중국사에서 가장 활기찼던 왕조는 한제국(기원전 206~기원후220)과 당제국의 이른바 한당성세(漢唐盛世)이다. 당 고조 이연이 수를 멸하고 성립한 당 제국(618~907)은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627년~649년)’로 제국을 정비하고 고종이 신라와 연합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중종과 예종 이후 측천무후(690~705)의 ‘무주의 치세’를 지나 현종(712~756)이 집권하고‘개원의 치’라는 부흥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의 난(755∼763년)으로 당은 혼란기에 접어든다. 숙종(756~762)과 대종(762~779)은 곽자의와 이광필의 보필로 안사의 난을 진압했으나, 당은 이후 종래의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는 무너져 절도사가 지배하는 군사적 지방분권화 현상이 강화되고, 균전제하의 조용조 세법은 양세법(兩稅法)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안사의 난은 중국 불교의 주류였던 교종의 쇠퇴와 지방에서 흥기하던 남종선(南宗禪)의 부흥을 불러왔다. 특히 769년에 마조 도일(709~788)은 장시성(강서성) 홍주 개원사를 중심으로 남악회양으로부터 전수받은 남종의 선법을 널리 펼쳤다. 그가 홍주( 현 강서성 성도 난창)를 중심으로 새롭게 펼친 마조선법을 홍주종이라 한다. 마조는 중국선인 조사선(祖師禪)의 개조로 평가받는 인물로 마조의 문하에는 백장 회해(720~814), 서당 지장(735~814), 남전 보원(748~835), 염관 제안 등의 전법제자들이 유명하다.

백장은 강서 난창에서 최초의 선원총림인 백장총림을 창설했다. 또한 교단의 조직이나 수도생활의 규칙 등을 성문화시킨‘백장청규’를 제정하고 ‘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불식·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의 규정을 만들어 실천한 인물이다. 그의 제자 가운데 황벽 희운과 임제 의현(?~867)에서 임제종(臨濟宗)이 위산 영우와 앙산 혜적(803~887)의 첫 글자를 따라 위앙종(?仰宗)이 시작되었다.

서당 지장의 법을 받아 신라말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을 개산한 인물이 도의·홍척·혜철이다. 821년 현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道義)국사가 개산한 산문은 가지산문(장흥 보림사)이다. 홍척은 실상산문(남원 실상사), 혜철은 동리산문(곡성 태안사)을 열었다. 또한 마조의 제자인 염관 제안의 법을 받은 범일은 사굴산문(강원도 강릉 굴산사), 마곡 보철의 법을 받은 무염은 성주산문(충남 보령), 남전 보원의 법을 받은 도윤은 사자산문(강원도 사자산 법흥사), 장경 회휘의 법을 받은 현욱은 봉림산문(경남 창원 봉림사)을 열었다. 또한 마조의 제자 창주 신감의 법을 이은 지리산 쌍계산문을 개산한 진감 혜소(774~850)도 있다. 이와같이 9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과 수미산문을 제외한 무려 7선문이 마조 문하에서 나왔다.

한편 후난성(호남)에서는 육조 혜능과 청원 행사의 법을 이은 석두희천(700~790)이 742년경에 호남성 남악 형산(衡山)의 돌 위에 암자를 짓고 그곳에서 늘 좌선하여 석두희천이라 하였다. 그는 석두종을 세워 크게 번창시켰으며 참동계·초암가를 지었다. 육조 혜능-청원행사-석두희천-약산유엄-운암담성-동산양개-운거 도응의 조동종의 법맥은 고려 초 수미산파(해주 광조사)의 개조이자 왕건의 스승인 이엄(870~936)이 계승했다.

중국 영화나 무협지를 보면 ‘江湖(강호)’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책의 저자들도 서문 끝에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바란다”고 한다. 여기서 강호제현의 본래 말뜻은 마조의 활동 무대가 강서(江西)이고 석두의 활동무대가 호남(湖南)인 까닭에 두 문하를 합해서 ‘강호(江湖)’라고 부르고, 그 문하의 뛰어난 제자들을 ‘제현(諸賢)’이라 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이라는 말이 생겼다. 명리학계도 실전상담 위주의 강호의 학문이었으나 이제는 제도권의 강단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여 학문적인 시민권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필자도 강호와 강단을 넘나들면서 강호제현들의 질정을 받으면서 역사와 명리학을 융합한 인문명리학의 내공을 연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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