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이슬람이 세계 문명을 주도했던 때가 있었다. 12세기였으니 대략 천 년 전쯤 그들은 정복지의 문명을 받아들여 크게 승화시켰다.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아직 후진국이었다. 이들은 영토분쟁만 일삼아 무기는 발달했지만 문화는 뒤처져 있었다. 이 때 ‘십자군’은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어리석다. 적은 외부에 있다”며 예루살렘을 점거하고 있는 이슬람, 유대와 전쟁을 시작했다. 십자군은 이 이슬람 정벌 때 처음 ‘커피’를 맛봤다. 전쟁 중에 그 환상적인 향기와 맛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러나 커피는 ‘이교도가 마시는 사탄의 물’이라는 유권해석으로 드러내 마시지 못했다.

14세기가 돼서야 커피 향은 유럽으로 자연스레 퍼졌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에서 르네상스 문화운동이 일어나고, 이들 도시에는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가 몰려들었다. 영주와 부자들은 이들을 지원하는데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종교적 속박과 권위에서 벗어나 이상으로 여기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간’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삽시간에 프랑스·독일·영국 등 서유럽 지역에 퍼졌다. 이 르네상스 운동이 유럽 사람들에게 씌워졌던 커피에 대한 금기의 낙인도 벗겨 버렸다.

마침내 “시인에겐 영감, 음악가엔 악상, 철학자에겐 진리, 정치가에게 평등을 전하는 커피”라면서 입에 커피를 달고 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들은 커피 금지를 위해 분투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교황 클레멘트 8세에게 도움을 청했다. 교황은 이 검은 음료가 과연 ‘사탄의 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마셔보다가 그만 그 향기와 맛에 스스로 항복하고 말았다. 교황은 꾀를 내 “아무리 이교도 음료라 해도 세례를 받으면 우리 기독교 것이 되는 법. 내가 지금 세례를 내리니 앞으로 우리의 커피로 여겨라”는 영을 내렸다.

이런 곡절을 거친 커피가 한반도에까지 건너와 이제 남한 전역에서 한집 건너 한집에 커피 냄새가 진동하는 지경이 됐다.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2017년 기준 경북·대구지역에만 5667곳(경북 2692 대구 2975곳)의 커피 전문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이후에도 커피숍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어서 현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야말로 ‘커피공화국’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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