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를 구울 때마다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하는 습관이 있다. 수직으로 죽어간 빗방울의 영혼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온집안 뒤끓는 빗소리에 라디오 켜는 버릇도 있다. 잡음잡음 잡히는 그의 아릿한 살내음, 비 오는 날 부침개가 그리운 것도 다그 때문이다.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화르르 제 몸을 뒤집어야하는 저 뜨거운 몸을 보라. 투명한 분계선을 넘나드는 빗소리, 외마디 돌의 비명이 새겨진 유리창엔 사랑을 깊이 한 눈망울도 맺혀 있다.

또록또록 수직의 빗방울 받아 적은 유리의 기술이다

 


<감상> 처마에서 떨어진 비가 큰 대야에서 찰랑이는 소리, 프라이팬에서 부침개가 익어가는 소리,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방이 공명을 일으키는 소리, 모든 빗소리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 그립고,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듣고 싶고, 깊게 한 옛사랑이 그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가운 빗물이 뜨거워지고 내 몸도 뜨거워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빗소리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낭만에 젖게 한다. 빗방울에 얽힌 수많은 기억들을 받아 적는 것은 유리의 몫이자 기술이다. 유리가 수직의 빗방울을 적는다면, 마당은 수평의 빗방울을 받아 적고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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