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밭에
살얼음이 와 반짝입니다

첫눈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고욤나무의 고욤들은 떨어지고

일을 끝낸 뒤 / 저마다의 겨울을 품고
흩어졌다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연기들

빈손이어서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왔고
저희는
저희 모습이 비치면 금이 가는 살얼음과도 같으니

이렇게 마른 입술로 /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 당신을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감상> 살얼음이 반짝이다 사라지듯, 나무가 열매를 떨어뜨리듯, 연기가 모였다가 흩어지듯 저마다 마음속에 겨울을 품고 삽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만물의 이치이니 어쩔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저희 모습이 비치면 금 가는 살얼음같이, 실체는 일시적인 모습일 뿐이므로 바로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순환에 놓여 있습니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을 부르면 당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까? 당신을 부르기만 하면 이미 당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까? 잠시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사라질 당신을 마른 입술로 불러도 괜찮은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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