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지금 워싱턴 정가와 언론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를 현재 선에서 동결될 것이라는 이슈가 뜨겁게 달구어 지고 있다. 반면 북한 핵으로부터 직접적 사정권에 있는 서울에서는 남·북·미 간 평화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흥분을 하고 있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남북에 이어 북·미간에도 문서 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평화시대가 도래되었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3차 북·미 정상회동을 두고 문 대통령이 평화론을 지핀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한반도에 과연 문 대통령 표현대로 ‘평화 시대’라는 말을 내세울 수 있는 현실인지 되묻고 싶다.

북·미 판문점 정상회동을 TV를 통해 본 것은 트럼프의 1인 깜짝 쇼였다. 겉만 화려한 퍼포먼스에 불과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를 풀기 위해 50분간 만난 북·미 정상 간 회동이 기껏 수주 내에 실무 작업을 할 것이라는 사실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판문점 회동이 끝난 직후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가 북한에 핵 동결을 해 줄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를 했다. 이번 판문점 비핵화 협상을 주도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지난 2일 판문점 정상회동 후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프더레코더(비보도)를 전제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이라고 언급했다. 비건 대표의 이런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핵 동결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최근 보도와 맞물려 주목되고 있다.

이번 판문점 미·북 정상 회동에서 트럼프가 보인 것은 대국민 대선용 선전뿐이었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북핵을 이용해 김정은만 컨트롤을 잘하면 내년 대선에서의 재선은 확실하다는 믿음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점을 파악한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내년 대선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했다. 판문점에서 트럼프는 미 국민들을 향해 전임 오바마 정부 때는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되고 북·미 양국 간의 냉전이 위험한 상황에 있었으나 자신이 취임한 후에는 양국 간 긴장이 사라지고 전쟁 위기에 있던 미국이 안전해졌다는 점을 수차례 부각시켰다. 외교 치적에 목말라하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앞으로도 ‘북핵 쇼’는 내년 대선까지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트럼프에겐 동맹국 한반도의 안위는 보이질 않는 것 같아 보인다. 트럼프는 판문점 회동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이것은 소형 미사일로 나는 이것을 미사일 발사라고 보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발사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미 본토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아니면 괜찮다’식으로 한국 전역을 위협하는 북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 트럼프 발언에 한국 정부는 용인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사거리에 상관없이 탄도미사일 발사행위를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이 같은 대선 초조감을 꿰뚫어 보고 앞으로 ‘살라미 전술’을 이용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서서히 달성해 갈 것이다. 김정은은 내년 미 대선 기간에 미국을 향해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한 발만 발사해도 트럼프가 그동안 쌓아온 외교 치적이 단번에 허물어지고 ‘대선 운동장’이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을 치밀하게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내년 미국 대선 기간에 ‘핵보유국 인정’을 받기 위해 집요하게 트럼프의 목줄을 조일 것이다. 지금 미 행정부에서 완전한 비핵화(CVID)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신 완전한 핵 동결론이 대두되는 것도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김정은 회유책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해가는 단계로밖에 볼 수가 없다. 김정은이 내년 미 대선의 키를 장악하는 순간 한반도의 안위는 핵의 먹구름 속으로 뒤덮여 진다. 핵 구름 속에서도 한반도에 평화가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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