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가득 장작을 모아둔 집에 들렀다. 가지런히 순서를 기
다리는 장작들 자신을 건네기 위해 몸을 다 던지는 의지도 있
다. 장작은 잘 타지 않는 마음에 대해 의구한다. 숙명에 대해
의무에 대해 최초의 책임 같은 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부러지는
지에 대해 불과 사흘 전 몸이 떨어져나갈 때 비명을 다 버렸는
데 남은 비명을 지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걸 나의 일이라고
생해도 괜찮을까. 어떻게 희생을 습관처럼 하니 장작 장작 장
작 연속해서 말해본다. 어떤 단어는 연이어 말하면 타는 냄새가
난다. 준비를 마친 나무들이 마음의 끝으로 달아난다. 마저 다
타지 못한 사람이 어제 부근을 맴돌고 있다. 해보지 않은 일들
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
래야 당신과 내가 마저 다 탈 수 있다. 그래도 괜찮은 시절이
다. 누군가의 끝으로 가고 있다.

<감상> 장작이라고 계속 말하면 타는 냄새가 납니다. 장작이 잘 타려면 밑불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잘 통해야 합니다. 바로 장작의 의지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준비를 마친 장작은 자신의 몸을 번제(燔祭)로 드리는 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다시 만나려면 준비를 해두어야 합니다. 당신과 내가 모두 탈 수 있으려면 밑불과 공기, 끈기와 무드가 필요합니다. 다 타지 못한 사람이 부근을 맴도는 것만으로도 “그래도 괜찮은” 시절입니다. 당신의 끝으로 내 마음의 끝이 가고 있으므로, 아니 활활 타고 있으므로.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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