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 박사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 박사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곧 통한다’극단의 상황에 이르면 도리어 해결할 방법이 생긴다는 말이다. 예고 없던 북·미 정상의 만남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분단 66년 만에 6.25전쟁의 정전협정 당사자들이 판문점에서 마주한 것은, 궁하면 통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에 있을 재선을 노린 것이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역시 대북제재 이후 막힌 경제 제재를 뚫기 위한 선택으로 서로의 부족한 상황을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이었다. 그러나 제2차 북·미 하노이정상회담 무산으로 실무협상은 제자리에 머물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에는 복합적 사실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서로의 진정성이 부족했다는 시각이다. 트윗으로 시작된 북·미정상의 판문점 깜짝 만남은 그동안 멀고 먼 길을 돌아 교착된 북·미간의 관계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상황은 이번 북·미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진전되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실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 백악관 초청은 비핵화 성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년 재선을 공식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선거에 미칠 영향이 대단히 크다. 더구나 상대 당 후보에게 뒤처진 지금의 지지율을 생각할 때, 이번 북·미의 만남과 향후 협상은 내년 대선 행보에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강한 승부사 기질의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결과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독단적 행보와 미사일 위협은 사면초가에 빠진 북한의 벼랑 끝 수단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대북제재로 압박을 받고 있는 지금의 북한은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극한상황이다. 지금까지 전력을 다해온 핵 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얻을 이익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면,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을 진행할 필요성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한 핵 포기 없이 어떤 대가도 지불할 수 없다’는 초강수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아는 북한으로서는 이번의 만남이 앞으로 경제와 체제인정의 마지막 카드를 쓰기 위한 준비단계이며, 언제든 협상에 응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인 것이다. 극한 상황의 북한. 한반도의 평화를 우선하는 우리. 강한 승부사 기질의 트럼프 대통령 3자 간의 진정성이 만든 남북 북미 만남은, 그동안의 불신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를 우선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를 실천해갈 것으로 보인다.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이번 만남에서 소외된 일본의 아베 수상은 느닷없이 한일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빌미로 경제 보복을 들고 나와 무역 분쟁에 불씨를 제공했다. 나아가 일본의 무역보복을 놓고 도와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대해 대놓고 문재인 정권의 무관심과 무능 탓이었다고 비난한 제1야당의 발언과 남·북·미 정상의 만남이 없으며 전화통화만 할 것이라는 같은 당 의원의 빗나간 코미디 예측 또한 배가 아픈 심술로 보여 실망을 자아낸다.

만사가 정체에 빠져 더 이상 무엇도 일어나지 않을 만한 극도의 상황에서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한다. 이로써 하늘이 도와 길하며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역의 계사하전에 나오는 ‘궁즉통’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이야기이다.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망각하지 않았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판문점의 만남은 하늘이 도와 통일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긍정의 가능성이다. 조금씩. 조금씩 슬기롭게 풀어가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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