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최근 졸업 30주년을 맞이한 미국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의 근황과 소감을 소개한 글이 화제입니다. 1번, 2번, 번호를 매겨서 수십 개 항목을 적고 있는데 1번 항목이 “선생이나 의사로 살아온 친구들이 대체로 좋아 보였다”였습니다. 그 뒤로는 “변호사나 금융업 종사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직업을 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라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이름난 명문대 출신들이니 정치인이나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분위기일 것으로 예단했었는데 의외였습니다. 전체 내용을 훑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면 ‘사회적 인정’과 ‘자기 존중감’,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과 ‘봉사하며 사는 삶’ 같은 것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특히 제대로 교육받은 이들에게는 더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들 ‘많이 가진’ 수재들에게는 세속적인 권력이나 부(富)보다는 자기만족을 주는 ‘인간답게 사는 일’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일 터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선생이나 의사라는 직업이 그런 ‘가치 있는 삶’을 제공하거나 허용하는 빈도가 높았던 모양입니다. 하버드대학 같은 명문대학을 졸업한 수재도 아니고 어려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입장도 아니지만, 어쨌든 40여 년 평생 동안 교단을 지킨 제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자사고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한창 불거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대표적으로 전주의 상산고가 도마 위에 올라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전주시 초·중·고 학부모연합회 관계자들이 전라북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상산고등학교의 자사고 일반고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반면 자사고 학부모들은 그런 사회적 저항(자사고 폐지 움직임은 일종의 교육 불평등 극복을 위한 사회적 저항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향 평준화를 넘어설 수 있는 수월성 교육의 보장과 행복추구권이라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가 침해받지 않게 해달라고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자기 논리가 있는 주장들이기에 특목고나 자사고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폭과 깊이는 날로 더 확대, 심화되는 추세입니다.

사람은 자기 입장을 거스르는 생각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특히 자녀 문제에 관해서는 역지사지가 정말 어렵습니다. 자녀교육을 다 마친 입장에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고교 평준화에 반대합니다. 적어도 15세 정도가 되면 자기 문제를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거기에 맞는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이나 경로가 왜곡되지 않도록 교육제도가 정립되어야 합니다. 스무 살 이전에 그런 자발적인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져야만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존재감(정체성)을 확립할 수가 있습니다. 갈 수 있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도 자기동일성의 토대 위에서 장기적인 ‘삶의 기획’을 추구할 수 있고 사회도 구조적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모와 사회에 달려 있습니다. 외국어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거 의과대학을 가고,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까지 나온 인재들이 로스쿨을 지망하는 게 다반사인 현실에서 특정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자나 권력자가 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되는(그렇게 부모와 사회가 강요합니다) 세상에서, 의대 진학률 높은 특정 자사고를 두고 “왜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존치시키느냐?”라고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의 졸업 30주년 회고를 진심 참조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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