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지가 허공 언저리에 긴 손가락을 내민다면
수작이란 그런 것

공터의 아이가 부푼 공을 차올려 공의 날개가 하늘을 베고 달아난다면 만짐이란 그렇게 휙 하고 쓱 한 것

사무친 장대비를 웅덩이가 받아낸다 흔쾌한 혼례다

바닥이 물컵을 껴안으려 온몸을 내던진다
가을 뱀이 땅속을 파고들듯 쏟아진 물이 바닥에 스며든다
그런 것 상처인 듯 화해인 듯

암소 눈이 여물통에 고인 물빛을 닮아간다 궁륭의 별이 지상의 눈빛을 닮아간다 묵묵하다 동행이란 바로 그런 것

십이월 눈석임물은 마실 가는 곳을 알려주지 않는다 문밖 눈사람 노부부를 저녁이 데리고 저문다 이별이다

먼눈이 멀어진 눈빛을 노래한다
최후의 시란 그런 것 그리 상투적인 것





<감상> 사랑한다면 겨울가지처럼 수작을 걸고 싶고, 공이 스치듯 그냥 한 번 만지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여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혼례하고, 상처주고 화해하면서 그렇게 살다 보면 눈빛이 닮아간다. 모습까지 닮아가니 늘그막까지 동행한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아무도 이별할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멀어진 눈빛을 그리워하며 노래한다. 시의 종착역은 그리움과 사랑의 노래이기에 얼마나 상투적인가.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