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북포럼] 용서와 화해의 사회
[새경북포럼] 용서와 화해의 사회
  •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19년 07월 15일 16시 1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7월 16일 화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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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불교에서 천수경은 관자재보살님의 자비를 가르치는 부처님의 말씀인데, 그 첫머리에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나온다.

이는 자비를 가르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의 업을 깨끗이 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짓는 여러 가지 업 중에서 가장 쉽게 짓는 업이 구업이며, 매우 무서운 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함일 것이다.

사람 입의 독이 뱀독보다 무섭다고 한다.

사람들은 좋은 일은 제 잘난 탓이고, 잘못되는 일은 친구 탓, 이웃 탓, 나라 탓, 조상 탓을 많이 한다. 참 잘못된 일이다. 현재 일어나는 좋은 일, 좋지 않은 일 그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함부로 말한다.

입을 통해서 쉽게 악업을 짓고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 지도자라는 정치인들의 입이 참 더럽다. 욕설과 험담 일색일 때가 많다. 뼈 있는 욕설이 잘하는 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만 보이는 것 같다.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더 강하게 표현하느라 말이 험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삼인행에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나. 남의 말을 잘 듣고 교훈을 얻는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 대부분 문제는 책임지지 않고 진실을 덮어버려 정의가 무너진 사례가 많은가 하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의 모든 일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아 헐뜯는 풍토에서 발생한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갈등과 폭력이 끊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원망과 분노, 증오로 남게 된다.

광화문 광장이 다양한 의견을 모아 꽃피우는 화합의 광장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를 증폭시키는 광장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용서를 말하고 화해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좋은 것은 칭찬해 주려 하지 않고, 원망이 비난과 증오가 되고 혐오로 확대되면서 서로가 상종하지 못할 인간이거나 집단인 것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서 혐오하는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증오와 혐오는 우리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진정한 안녕과 평화를 위해 증오와 혐오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용서와 화해의 길로 들어서려면 먼저 이해와 공감,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입장이나 객관적인 기준으로만 상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기도 해야 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서의 교훈,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하라’는 공자의 말씀,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모두 역지사지의 바탕 위에서 나온 말이다.

용서를 말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용서에 대한 언급은 자칫 현실에 눈을 감게 하고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용서와 화해 없이는 원망과 분노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갈등과 폭력은 새로운 원망과 증오를 남기고 앙갚음과 되갚음의 문제를 만들어 낼 뿐이다. 용서와 화해는 그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분노의 굴레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두 귀로 들은 것이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못되고, 내가 두 눈으로 본 것이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못 된다. 각종 매체들이 쏟아내는 뉴스도 ‘정구업진언’해야 한다. 입의 정화로부터 이해와 공감,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적폐를 청산하면서 새로운 적폐를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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