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교왕고슬' 정치
[삼촌설] '교왕고슬' 정치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07월 15일 17시 48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7월 16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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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투는 전국시대 말기의 장평전투다. 진나라와 조나라가 산시성 장평에서 2년 반 동안 벌인 싸움이다. 천하 통일을 향해 승승장구하던 강국 진나라는 대군을 이끌고 장평에 진을 치고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 명장 염파는 성을 굳게 지킬 뿐 나가 싸우지 않았다. 전투가 지지부진 소강상태에 빠지자 진나라의 지장 백기는 이간책을 쓰기로 했다.

“조나라 장군 염파는 조사의 아들 조괄이 대장군이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귀가 얇은 조나라 효성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대장군에 임명하려 했다. 병상에 있던 재상 인상여는 이 소식을 듣고 조괄의 대장군 임명을 말렸다. “명성만 듣고 조괄을 대장군에 기용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거문고 발에 아교를 칠해 발을 고정 시키고 거문고를 타는 ‘교왕고슬(膠枉鼓瑟)’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 아버지가 남긴 병서를 읽었을 뿐이지 임기응변이 무지한 자입니다”

거문고 줄을 받치는 발을 고정 시키면 음을 조정할 수 없다. 그래서 ‘교왕고슬’이라는 말은 융통성이 없는 확정편향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상황에 유효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효성왕은 인상여의 충언을 듣지 않고 염파를 밀어내고 조괄을 대장군에 임명했다. 아들이 대장군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조괄의 어머니는 효성왕에게 대장군 임명을 거둬달라고 간청했다. 조괄의 그릇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자기 아들 때문에 조나라 군대도, 나라도 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효성왕은 자신이 한 번 내린 결정을 거두지 않았다. 조괄은 출정하자마자 백기의 기만전술에 말려들어 대패하고 말았다. 조괄 자신도 전투 중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했다. 실전경험이 많은 백전노장을 쫓아내고 전쟁경험도 없는 풋내기에 군권을 맡겨 참극을 자초하고 나라도 망하게 했다.

원전사업을 망가뜨린 탈원전, 고용 참사를 부른 소득주도성장, 인재 씨말 리는 적폐수사, 자기편만 챙기는 돌려막기 인사, 고립무원 외교 난맥 등 문재인 정권의 융통성 없는 ‘교왕고슬 정치’로 나라는 쪼그라들고, 국민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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