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일자리연구실장 연구위원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일자리연구실장 연구위원

일본은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간 연관관계가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올해 일본과의 상반기 전체 교역금액 비중은 7.4%로 베트남과 홍콩 다음으로 5위에 그쳤다. 하지만 고급기술이 필요한 자본재와 중간재 제품의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우리 무역구조의 약점을 잡아 수출제한 조치를 통한 정치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주력업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3대 핵심 제품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시발점으로 수출통제를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은 수입의존도가 90%가 넘는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제조용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출을 중단한 것이지만 탄소섬유, 모터, 정밀기계 등으로 규제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지금 우리나라는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제조업경기는 부진에 허덕이고 있으며,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은 지난해만 보아도 일부 산업을 제외한 많은 업종들이 부진을 지속하고 있다. 반도체가 근근이 떠받쳐온 우리 경제는 더 이상 힘쓸 산업이 없어진 상태이다. 초기 신흥국은 노동력을 내세워 섬유나 가구 등에서 우리를 따라잡고 있으며, 기술 수준이 높아진 신흥국은 우리의 주력 업종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글로벌시장에서 고전을 하고 있으며, 기술혁신 없이는 더 이상 우리 경제를 이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몇몇 대기업의 기술과 그 동력으로 성장해왔다. 지금은 중소기업과 소규모 점포에서도 혁신적인 성과가 없이는 해외시장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기업의 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은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중심인 경북 산업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해 경북의 무선통신기기, 평판디스플레이, 반도체 수출액이 모두 120억4천만 달러로 경북 전체 수출액의 29%나 차지하는 수치이며, 수출 품목 5위권 안에 있는 지역주력 산업이다. 이번 수출규제로 인해 지역기업, 특히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 구미지역 기업이 받을 영향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장기화 될 경우 지역 산업의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며, 연관산업도 영향을 미쳐 지역 경제 및 산업 성장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일본은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최고의 소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소재 수출규제로 인해 우리나라가 반도체 생산을 중단할 정도의 대체 불가능한 품목은 아니며, 다른 나라와 국내 기업에서 물량확보가 가능한 부분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오히려 수익성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도체는 원가보다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공급둔화는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국내 기업의 채산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도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소재 국산화를 위한 상당한 예산을 투입함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 지역에서는 이번 수출규제 3개 품목과 향후 추가 제재 가능한 품목들뿐만 아니라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핵심 부품·소재·장비 등을 선정해 자립화 기반마련을 위해 집중적이며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시장 규모와 관계없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지역기업을 발굴하여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주요 수입품목이 첨단 소재 및 부품이라는 점에서 수입에 차질을 빚을 경우 우리 제조업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당장 우리나라나 지역에 치명적인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경기상황이 좋지 않다. 산업생산도 감소하고 소비 수준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통화속도가 느려져 경제의 생동감이 사라진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모두 차분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공장의 생산중단으로 자동차부품 수급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극복한 사례가 있듯이 현명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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