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한국 정부에 경제보복을 행동에 옮긴 일본 아베 정권과 이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모양새가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인다.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 같다. 유일하게 중재를 할 수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내년 대선을 위한 ‘김정은 띄우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라”고 일본 정부에 제의했으나 아베 정부는 곧바로 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러자 청와대는 일본 측이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요구해온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으로 맞섰다.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18일까지 중재위 회부에 응하지 않으면 전략물자 수출우대국 목록(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한일정부의 갈등이 ‘강 대 강’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일본 측은 이번 경제보복 조치는 한국 측의 전략물자 유출로 인한 ‘안보’ 문제에 해당한다며 문 대통령의 외교적 해결 제의를 거부 명분으로 삼았다. 일본 측은 경제보복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불만을 표출한 보복 행위인데도 이를 근거 없는 한국의 전략물자 유출 의혹으로 포장하여 국제사회에 자국에 유리하게 여론을 퍼트리고 있다. 아베 정권의 이런 행태는 일제 강압기 때 보여줬던 일본 정치권력의 극악하고 저열하면서도 치밀했던 제국주의 속성을 데자뷔처럼 떠올리게 한다.

아베 정권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8개월 동안 치밀하게 대한(對韓)경제보복책을 세워놓고 실행의 타이밍을 저울질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 실행이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가 판문점 회담을 끝내고 비행기에 올라 이륙한 직후로 맞추었다. 아베 총리가 G20 공동성명으로 채택한 ‘자유롭고 공정하고 차별없는 무역체제 보장’의 발표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 성명에 완전히 반(反)하는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국제 정상 간에 협의 결의한 성명을 무시하고 한국 정부에 대한 보복조치를 단행한 아베 정권에 맞서야 할 우리 정부로서는 아베가 아파할 급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기껏 꺼내 든 것이 동학농민혁명가인 ‘죽창가’에다 ‘국채보상운동’ 외환 위기 때의 ‘국민 금 모으기 운동’ ‘이순신의 배 12척’등 반일 감정을 돋우는 수준이다. 지금은 국민에게 반일 감정을 일으켜야 할 시점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란과 죽창의 시대가 아닌 공존과 타협의 시대로 가야 할 때다. 아베 총리가 지난 1개월여 동안 트럼프를 3차례나 만난 이유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2년여 동안 ‘반일(反日)을 부추기는’ 눈엣가시인 한국의 문 대통령을 제재할 수단으로 경제제재를 트럼프와 논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 협상에서 대북 제재 해제에 목을 매며 성주 사드 경우처럼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요구를 비켜가는 ‘문재인 정부 손보기’에 대해 그간의 불만을 아베와 공감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간곡한 중재 요청에도 묵묵부답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는 일본 산케이신문이 청와대가 워싱턴에 중재 요청한 사실을 두고 “한국이 미국에 울며 매달리고 있다”는 식의 조롱 조의 저급한 기사까지 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의 경제분쟁에 대해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최우방국이 없는 실정이다. 사실상 외교관계가 무너진 상태다. 한일 관계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이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한가한 모습과 야당이 줄기차게 임명을 반대하는 검찰총장의 임명 강행은 문재인 정부의 내외치(內外治) 국정운영의 한 단면을 보는 사례다.

어찌 됐건 일본의 경제보복을 풀 수 있는 방법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개입이 유일해 보인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의 줄타기 외교를 과감히 버리고 그동안 소홀히 해온 미국에 대한 동맹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피로 맺은 한미동맹 복원에 나서야 한다. 미국 정부에 혈맹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것만이 한일 간 분쟁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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