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두르고 멀리 떨어져 보면
잊고 싶었던 얼굴조차 그리워진다
섬에서 걸어 나오고 싶어
바다를 다 쏟을 수는 없나니
가만 눈 감고 귀 기울여보면 들으리라
주물럭주물럭 철썩철썩 세탁을 한다
때 묻은 사람이 바다를 더 사랑하는가 보다
부끄러운 기억도 깨끗해져서
언젠가 아픈 마음과 함께 사라지리라
안전띠도 없이 살아온 몸
나는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어 온 게 아니라
나는 바다에 뭔가 고백하러 왔나 보다
바다의 영원에 동참하러 왔나 보다
침침해진 눈을 솜구름이 닦아준다
나는 비로소 밝아지는 눈
하얗게 달려드는 말 잔등을 탄다


* 호치민에서 남서로 390㎞ 떨어진 베트남의 제주도 같은 섬.




<감상> 고독한 사람이 섬으로 가는 게 아니라, 때 묻은 사람이 섬으로 간다. 파도가 섬을 둥글게 만들 듯, 부끄러운 기억도 상처 입은 마음도 둥글게 말끔히 씻어준다. 바다에 서면 잊고 싶은 얼굴조차 그리움으로 떠오르고, 고백하고 싶은 말들을 파도에 실어 보낸다. 인간의 삶은 찰나이지만, 섬을 중심으로 회귀하는 물고기와 바닷물은 영원하다. 한번쯤 그리운 섬으로 가보자. 마음이 맑아지고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얗게 달려드는 파도의 잔등에 올라타 숭어처럼 영원을 꿈꾸어 보자.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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