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판장은 온통 무덤 천지였다
가자미 노가리 도루묵 명태 정어리……
계절마다 종류가 다른 무덤은
봉분이 높고 둘레가 빽빽하게 쌓아져
견고했다 / 분순이 아지매는 매일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살아있던 것들로 꿈틀거렸던
무덤을 파고 들어가면 훅 비린내가 쏟아졌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조금 열리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집
질긴 들숨과 비린 날숨으로
만들어진 집
남편의 폭력도
고된 시집살이도
그 앞에선 맥을 못췄다
내 고향 여인들은
스스로 무덤 속으로 매몰되었다
죽음은 하나도 비리지 않았다




<감상> 어판장에 쌓여진 생선들은 계절마다 다른 무덤이 됩니다. 봉분이 높고 둘레가 빽빽하게 쌓여진 그 무덤들을 고기별로 해체하는 고된 노동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무덤들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겨우 열리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집”이 됩니다. 남편의 폭력도, 고된 시집살이도 생선 무덤 앞에선 맥을 못 추기 때문입니다. 잠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식솔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스스로 무덤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몇 번이고 무덤 속으로 순장(殉葬)되고 맙니다. 너무 비려서 죽음은 조금도 비리지 않았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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