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고치다 손을 다친 아버지
마이신 두 알 구하러 소아과에 갔다

노인네 마음 알기나 하는지
나이 어린 간호사는 / C.T를 찍어봐야 한다고
파상풍으로 고생할 수 있다고
정형외과 가야한다고 딱 / 잘라 말했다

마이신 달라고 실랑이벌이다
주저앉는 노아
소아과에서 떼쓰고 깽판 부린다는
전화 받고 달려간 나에게
꼬깃꼬깃 오만 원을 꺼낸다
아직도 어리다 어린 왼손으로

수돗물도, 전등도 종일 켜 놓고
아파트 비밀번호도 잊어버리고
잠그지 않은 가스 불처럼
아슬아슬 여든일곱 / 늙은 아이




<감상> 여든 넘은 아버지는 늙은 아이와 같습니다. 다친 손에는 마이신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에 간호사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체면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의 모습입니다. 중년의 아들에게 오만 원을 내미는 아버지는 이것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잠그지 않은 가스 불처럼 언제 어디서 떼쓰고 깽판 부릴 줄 모르는 늙은 아이인 아버지가 그래도 계셔서 든든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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