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달도 차면 기우는 법. 20세기 이후 200여 년 가량 이어온 팍스 아메리카나가 쇠퇴하고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북미·유럽의 ‘서쪽 시대’에서 아시아가 중심이 되는 ‘동쪽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이 에너지와 무역을 중심으로 상호 의존성이 심화되면서 정치·경제의 주요 무대가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통제하면 유라시아를 통제하고, 유라시아를 통제하는 자는 전 세계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 칸, 티무르 등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영웅들이 이곳을 괜히 정복하려고 했겠는가? 유라시아 대륙 극동에 위치한 한국에게 중앙아시아의 부흥은 새로운 기회이자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를 잡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중앙아시아의 심장부(heartland), 우즈베키스탄을 잡으면 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인구와 경제적 비중,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현재 경제 규모는 카자흐스탄에 뒤지지만, 중앙아시아 역사와 찬란한 이슬람 문화유산의 절대다수가 우즈베키스탄에 있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우즈베키스탄이 흔들리면 중앙아시아 전체가 흔들릴 만큼 전략적 요충지다. 특히 미르지요예프 정부 출범 후 인권개선과 언론자유, 중앙아시아의 평화정착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제사회의 가치 실현을 위한 우즈베키스탄의 이 같은 노력은 CIS(독립국가연합)국가들로서는 전례가 드물다.

안타까운 것은 세계의 거대한 신(新)바람을 예고할 만큼 우즈베키스탄의 국가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지만 우리나라 국민에게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낯설고 먼 나라다. 우즈베키스탄을 후진국 혹은 사막국가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반면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한류(韓流)영향으로 한국 국민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매우 크다. 한국 제품의 우즈베키스탄 가전시장 점유율이 80%를 상회한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이 되지 않고 정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후속 노력들이 지속되기 위해 우리가 선제적으로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문화행사.

우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국회의원들을 하나로 묶는 『한-우의원연맹』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동안 양국에서는 한-우 의원친선협회와 우-한 의원친선협회가 있었다. 하지만 양국의 강력한 결속을 도모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그 규모나 성격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개혁·개방의 변화들은 대통령 명령이나 행정부의 고시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즈베키스탄 입법기관인 올리 마즐리스(Oliy Majlis)를 통해 이뤄진다. 양국의 교역·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의 선제적 구축이 매우 중요한 만큼 양국 의원들의 교류를 정례화 할 수 있는 기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내 ‘우즈베키스탄 분과’를 개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북방외교의 기치를 올리기 위해 구성한 매머드급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대위원회 등도 각 정부가 표방하는 국정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종래에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실속 없는 조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우즈베키스탄이 신북방정책의 핵심 거점 국가로 상정된 만큼 『우즈베키스탄 분과』를 별도 조직하여 신북방정책 핵심 전략 수립의 중추기지로 삼는다면,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대외적으로는 소통과 협력의 창구로서, 대내적으로는 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십분 발휘해 신북방정책의 성공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양국 간 협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산·학·연·정 공동협의체’가 가동되어야 한다. 사회간접자본(SOC)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나라가 단순히 가스·우라늄 등 자원 개발에 치중하기보다는 자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자하기를 희망한다. 또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밝혔듯이 우즈베키스탄은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육성을 통해 산업구조 다각화, 고도화를 달성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민간의 자발적 경제참여를 유도하여 민간 차원의 기술혁신과 신지식 개발을 장려해야 한다. 더불어 양국의 민간 싱크탱크(ThinkTank) 교류협력을 통해 ‘인적자원의 확충’과 ‘기초지식의 공여 활성화’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우즈베케스탄에 있는 고구려 사신관련 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로시압 궁전 벽화에는 고구려 사신이 등장한다. 이는 고대 한반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독자적으로 국제 교류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핵심적 증거이자 양국 간 오랜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양국 간 동질의 역사적 연대감과 문화적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큰 공통분모이며 자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산을 활용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다. 단발성 외교적인 이해와 관심의 수준을 넘어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깊은 사려와 미래지향적·호혜적 관점에서 전략과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을 잡으면 중앙아시아를 잡고, 중앙아시아를 잡으면 유라시아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앙아시아의 심장부인 우즈베키스탄은 대한민국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룰 기회의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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