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서애·右학봉…퇴계 제자 '400년 서열 다툼' 마침표 찍다

호계서원
△퇴계 이황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진 여강서원.

여강서원(이후 호계서원)은 퇴계 이황을 봉안하고 선비를 기르기 위한 강학의 기능을 담당하고자 1575년에 건립됐다. 1576년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했다. 퇴계 선생을 봉향한 서원이라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서원의 규모도 영남지역에서 가장 큰 대표서원이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사당인 존도사가 6칸, 신문 3칸, 신주 5칸, 강당인 숭교당 15칸 등 92칸이나 됐다. 그러나 여강서원은 1605년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1606년 북쪽으로 100보 위치에 중창했다.
여강서원(호계서원) 현판
처음에는 퇴계의 위패만을 모시고 제사 지내다가 광해군 12년(1620)에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두 분의 위패를 함께 모시게 되었으며 숙종 2년(1676)에 임금으로부터 ‘호계’라는 이름과 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400년 넘게 서애와 학봉 두 분의 위패 위치나 호칭 등을 놓고 갈등이 계속되었으니 이를 병호시비(屛虎是非)라고 한다.

결국 안동 유림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끝없는 반목과 시비를 벌이게 되었으며, 퇴계는 도산서원으로, 서애는 병산서원으로, 학봉은 임천서원으로 따로 모셔가게 되었으니 모실 분을 잃어버린 호계서원은 쇠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남았고 임천서원은 호계서원과 함께 훼철됐다.

당시 1만27명이 만인소를 올리는 등 격렬하게 반대하였으나 1871년 9월 9일 결국 호계서원은 훼철됐다.

건물은 앞면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자형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지붕 양쪽 끝이 정면을 보고 있는 ‘ㄷ’자형을 하고 있다. 건물들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7년 뒤 강당건물만 새로 지었다. 원래는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임하댐 아래 공원으로 옮겼다.

현재 호계서원 이전지로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옆 중턱에 이건 작업이 진행 중이다.

400년간 이어진 병호시비 끝에 퇴계 이황(가운데) 왼쪽에 서애 류성룡 선생, 오른쪽에는 학봉 김성일 선생 영정이 모셔지는 것으로 결론 났다.
△400년 끈 병호시비 일단락 4인의 위패 한 자리에.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가운데 누구의 위패를 퇴계의 왼편에 둘지를 두고 400년간 논쟁을 벌인 ‘병호시비’가 2013년 마침표를 찍었다.

병산서원과 호계서원 간의 시비라고 불리는 이 다툼은 1575년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호계서원’에 1620년 제자였던 서애·학봉 선생 위패가 각각 퇴계 위패 좌우에 추가로 봉안되면서 좌·우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다툼이다. 수차례 신경전 끝에 1800년대 초 서애 선생 위패가 병산서원으로 옮겨 가면서 다툼은 중단됐었다.

200여 년 동안 잠잠했던 다툼은 안동시가 최근 호계서원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2009년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 문중 대표가 퇴계 좌측에 서애 선생, 우측에 학봉 선생 위패를 모시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안동 지역 유림들이 “병호시비는 종손 간에 합의할 게 아니라 학파 간에 결론을 내야 하는 사안이니 재논의가 필요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결국 이 다툼은 나이는 적지만 벼슬이 높았던 서애 선생 위패를 가장 상석인 퇴계 선생 위패의 좌측(좌배향)에 두기로 하는 대신 학봉 선생 위패와 그 옆에 그의 제자인 대산 이상정(1711~1781) 의 위패를 추가로 모셔 함께 우배향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로써 조선을 대표하는 유림 4인의 위패가 한 자리에 봉안되게 됐다.

호계서원 조감도
△유교문화 및 인성교육의 장으로 활용

안동시가 국·도비를 포함 총 50억 원을 들여 호계서원 복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400년을 끌어오던 병호시비는 지난 2013년 5월 경북도와 안동시 중재로 퇴계 왼쪽에는 서애, 오른쪽에는 학봉과 대산 이상정의 위패를 함께 모시는 것으로 문중 간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본격적인 복원에 돌입했다.
호계서원 복설 확약식을 봉정하고 있다.
호계서원은 원래 90칸 건물규모를 자랑했으나, 대원군 서원철폐 때 훼철된 후 1878년 강당만 건축되고 이후 안동댐 건설로 1973년 현재 위치한 임하댐 아래로 이건 됐다.

하지만 임하댐 건설과 함께 여수로의 물보라와 습기로 인해 서원건물 훼손이 우려됨에 따라 ‘호계서원이건추진위원회’에서 꾸준하게 이건 및 복원을 요구해 왔다.

이에 2013년 문중 간 합의 후 국학진흥원 인근으로 이건 계획을 확정하고, 문화재 위원회 승인 등 행정절차를 마치고 1차로 부지조성과 숭교당, 동몽재 이건공사를 마무리했다.
이건 작업이 한창인 호계서원
현재 사당과 동·서재, 문루, 보상고 등 11동 규모로 복원하고 있다. 복원사업은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올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계서원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면 인근 한국국학진흥원과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유교문화 및 인성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교육생과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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