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보복성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러·중 군용기 영공침범, 북한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가 격랑에 휩싸이면서 우리 주권이 군사 외교적으로 위협받는 정도가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인지 임진왜란사를 기록한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인용한 글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하나같이 책 이름 ‘징비록’(懲毖錄)의 징비의 뜻인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삼간다’는 ‘시경’에 담긴 글귀의 뜻을 첫 번째의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류성룡은 이 책에서 “통치자가 선악을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현실을 외면하면 국가에 환란이 닥친다”고 경계를 했다. 무능한 선조가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배척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통신사 황윤길(정사)이 “일본이 침략할 것이다”는 말 대신 부사 김성일이 “침략을 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에 손을 들어줘 금수강산이 왜군에 의해 7년간 피바다로 유린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한말에도 무능한 고종과 위정척사(衛正斥邪)를 국시로 내건 대신들의 정쟁으로 국가통치권을 일본으로 넘겨주고 힘없는 백성들이 36년간 왜정 치하에서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했다. 무능한 통치자가 통합적 리더쉽이 없이 사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우리 국민은 역사를 통해 생생히 보고 겪어왔다.

지금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간 과거사를 언급하며 대일(對日) 강성 대응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있다. 강대강으로 양국이 부딪히면 결국 한국·일본 모두 국제사회에서 패배자 밖에 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대인(大人)의 입장에서 아베를 포용하는 실효적 해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조국 민정수석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친일’ ‘이적’ 등의 자극적 표현으로 국민을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이런 류의 발언은 지지층을 결집해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해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한일 양국 국민의 정서를 핍박하게 만들어 한쪽은 ‘반일’ 다른쪽은 ‘혐한’으로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조 수석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서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인은 마땅히 친일파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또 “일본의 궤변을 반박하기는커녕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며 한국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는 일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의 정략적 행태가 개탄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21일에도 WTO에 임하는 정부의 각오를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일본의 국력이 분명 한국보다 위지만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고 국민들을 독려했다. 애국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다. 왜 조 수석은 적을 앞에 둔 상태서 적전분열을 일으켜 상대를 이롭게 하려고 하는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지난 13일 이번 사태에 대해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90년대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처럼 뭉쳐서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반일 감정을 자극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결집시켜 대외적 여론전에 나서는 것도 한 방편이지만 현재의 상황은 이런 형태의 반일 움직임으로 해결될 수 있는 임계점은 이미 넘어섰다. 아베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불만을 품고 보복 수단으로 대한(對韓)수출 규제를 해놓고 “한국이 일본 전략물자를 3국에 유출해 수출규제를 한다”고 늘어놓는 궤변을 막을 확실한 증거물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냉철한 논리 없이 SNS 등으로 국내에서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해법은 국론 분열 이외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돌아오겠는가. 1443년 26세의 나이에 서장관으로 일본을 다녀와 1471년 일본을 다방면으로 분석한 책 ‘해동제국기’를 쓴 신숙주가 죽음을 앞두고 임금 성종(成宗)이 ‘앞으로 나라가 가야 할 길’을 묻자 “일본을 왜구라 하며 멀리하지 말고 화친을 해야 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리에겐 ‘불가원 불가근’의 존재인 일본·중국과 21세기를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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