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손으로 글을 쓴다니? 그런 당연한 말을 왜 하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당연한 말을 특별하게 말할 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잘못된 우리말 사용법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느 대학에 가 보니 ‘제1체육관’이라는 이름이 건물 전면에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제2, 제3체육관이 또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그냥 ‘체육관’이라고 쓰는 것이 맞습니다. 최초의 체육관은 그냥 ‘체육관’이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생긴 것들에만 제2, 제3을 붙이는 것이 맞습니다. 뒤에 생긴 것들 때문에 앞의 것이 이름을 바꾸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2’라는 말은 순서나 규모에서 두 번째라는 뜻 말고도, 후발 주자 중에서 앞의 것과 매우 비슷한 의미나 가치를 가진 것들을 지칭할 때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 이강인을 ‘제2의 차범근’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2’의 용법을 바탕으로 해서(그것을 뒤집어서) ‘제1’이라는 말을 강조의 용도로 특별히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총기는 제1의 생명이다.”와 같은 말이 그런 경우입니다. 군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총기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일종의 과장법이지요. “어떻게 총기가 제1의 생명이란 말인가? 생명이 ‘제1’이고 (그것을 지키는) 총기는 ‘제2’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해서 “총기는 제2의 생명이다.”라고 군대의 구호를 바꾼다면 그는(그 집단은) 언어의 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집단)인 것입니다. ‘제1체육관’으로 써야 제2, 제3과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못 배운 자들의 화법’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글은 손으로 쓴다.”는 말도 결국은 “총기는 제1의 생명이다.”와 같은 (배운 자들의) 과장 화법입니다. “글쓰기에는 이론이 필요 없다, 글쓰기는 온전히 실기(實技) 영역에 속한다.”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작가에게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십니까?”라고 기자가 물었더니 그가 답하기를 “첫 줄만 쓰면 글쓰기는 끝난다. 다음 문장은 앞 문장이 알아서 불러낼 테니까.”라고 했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작품 속에 있는 그 대단한 것들, 화려한 수사(修辭)나 감동적인 사건들은 다 어디서 오는 것이죠?”라고 또 물었더니 “글쎄, 나도 모르지. 나중에 보니 그런 것들이 그 안에 다 들어앉아 있더군.”이라고 대답했답니다. 머리로, 생각해서, 쓰지 않고 손 가는 대로 글을 썼다는 말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한 대가(大家)는 아니지만 저 역시 글은 손으로 쓴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생각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가급적이면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미식가가 혀로 생각하고(물론 눈이나 코도 사용하겠습니다만), 권투 선수가 주먹으로 생각하고, 검객이 칼로 생각하는 것처럼, 글 쓰는 자는 일단 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결과를 예단하지 않고 과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손으로 글을 쓴다.”라는 말은 “써 나가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학습되는 그 모든 것의 총합으로 글은 이루어진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글쓰기를 위해서 생각을 키워야 한다.”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두루 수집합니다. 그래서는 글쓰기의 진정한 경지에 들 수 없습니다. 모든 의식과 무의식의 재료들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이 됩니다. “글은 손으로 쓴다.”라는 말은 그러므로, 글쓰기가 자신의 삶 전부를 반영하는 실천의 장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손은 거짓말을 모릅니다. 손 글은 자신이 살아온 것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내 손은 알고 있다.”라고 믿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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