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굴곡 속에 고유 지명들이 많이 바뀌었다. 신라식 발음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꾼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은 아득해서 덮어 두더라도 일제 강점기의 일은 쉽게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도 아직 그대로 사용하는 곳이 있다. 일제는 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창씨개명(創氏改名)’에 앞서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꿔 ‘창지개명(創地改名)’이라 할 수 있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과 명칭 변경을 단행했다.

일제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한반도 전역에 대한 평판측량을 실시해 지도를 작성했다. 지도 제작사업과 동시에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마을이나 도로, 하천, 산, 평야, 해안, 주요 시설 등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동이나 리를 일본식의 마을 이름에 붙는 ‘~정’(町·일본식 발음 마치)을 획일적으로 붙여졌다. 대구 동성로는 ‘동성정(東城町)’, 계산동은 ‘명치정(明治町)’, 동인동은 ‘동운정(東雲町)’으로 고치는 식이다. 그 당시 군 97개, 면 1834개, 이·동 이름 3만4233개가 없어지고, 새로 생겨난 지명이 전체의 35%인 1만1000여 개나 됐다.

선조들이 한반도를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이라고 해서 영일만을 에워싼 포항 반도의 끝을 호미곶(虎尾串)이라 했는데 일제는 호랑이를 토끼로 둔갑시켰다. 일본 지리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우리 지도를 토끼 모양으로 그려 호미곶을 ‘장기갑(長鬐岬)’이라 이름 붙인 것이 오랫동안 사용됐다.

이렇게 바뀐 지명이 광복 74주년이 다돼 가도록 바뀌지 않은 곳이 많다. 울진군은 서면과 원남면을 ‘금강송면’과 ‘매화면’으로, 청송군은 부동면을 ‘주왕산면’, 이전리를 ‘주산지리’로 바꿨다.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가장 먼저 불붙은 경북·대구에서 일제강점기에 바뀐 고유지명 되찾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경북 칠곡군 주민들이 왜관역 앞에서 “단지 일제 때 일본인이 많이 살았다고 ‘왜관’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지명을 바꾸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지명은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 지형적인 특성을 반영한 문화유산이자 지역의 정체성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일제 청산 차원에서 지명 되찾기를 적극 도와야 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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