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감나무 옛집
먹감나무 옛집
  • 고영
  • 승인 2019년 08월 01일 15시 4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02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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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는 순간부터 그 집은
옛집이 되었다 그 집에 있던 먹감나무에게
나는 옛사람이 되었다

절구통에 고인 빗물이 썩다가 말라갔다
함부로 웃자란 나뭇가지마다
거미들이 닥치는 대로 허공을 먹어치웠다
그 집을 지나던 새들이
먹감나무 그늘을 담장 밖으로 물어 날랐지만
떨어진 풋감에는 부리를 대지 않았다

부스럼딱지처럼 박혀 있는 옹이들,
옹이의 퀭한 눈 속에
먹감나무의 생애가 고여 있었다

언제부턴가 / 먹감나무는 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걸 알았다

한여름 불볕에 데인 화상이라 여겼으나
가을이 오고 속병이 깊어지면서
그것이 / 오랜 적막이 남긴 상처라는 걸 알았다




<감상> 담장 곁에 있던 먹감나무는 식구와 집과 나와 삶을 같이 했다. 식구들과 함께 집을 떠나자 먹감나무에게 나는 옛사람이 되었다. 우리네 삶을 지켜본 오래된 먹감나무는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퀭한 눈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정들었던 이가 떠난 뒤에 찾아오는 오랜 적막은 큰 상처를 남긴다. 그대가 없는데 정들었던 오랜 추억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무와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인연을 맺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오래 함께 하는 것이 사랑 중에 제일이고 적막이 덜함을 깨달은 자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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