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2차보복] 기계·자동차·ICT '발등에 불'…비상경영 돌입
[日 2차보복] 기계·자동차·ICT '발등에 불'…비상경영 돌입
  • 연합
  • 승인 2019년 08월 02일 10시 5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0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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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어떤 소재·장비가 영향받을지 파악 어려워…상당히 혼란"
불안감에 서둘러 재고 확보·거래처 다변화 추진 등 ‘총력 대응’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기계회관에서 열린 일본 수출 규제 관련 기계업계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기계·자동차 분야 일본수출업계 강화 조치 및 대응방안’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
일본이 2일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함에 따라 일본발 수출규제 악재는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게 됐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ICT(정보통신기술) 업계는 물론 공작기계, 전기차 배터리, 자동차 부품업계 등의 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들 업계는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실질적으로 어떤 소재나 부품, 장비 등의 수입에 타격을 줄 것인지 현재로서는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불안감 속에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공작기계·자동차 부품 ‘비상’…장기화 땐 완성차도 영향권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의 주요 목표인 공작기계 분야는 일본 의존도가 높고 전략물자로 지정된 제품들이 많아 국내 정밀 가공업체를 중심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일본이 공작 및 정밀기계 수출을 제한한다면 영향은 기계 업계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와 조선, 건설기계 등 중공업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기계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공작기계의 60%가 일본이 분류한 전략물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기계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국내 공작기계 시장 점유율은 25% 수준이며 고정밀 가공 부문에 특화됐다.

공작기계는 국산이나 독일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가격 문제가 있다. 독일 공작기계는 일본산과 같은 품질 수준에도 가격은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신규 기계설비 투자를 미루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자금에 여유가 있는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투자를 집행한 사례도 있다.

일본이 공작기계 완제품이 아니라 ‘공작기계 수치제어반(NC)’의 수출을 규제하는 경우에도 제조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는 일본 업체인 화낙(FANUC)의 국내 NC 점유율이 90%에 이르기 때문이다.

NC는 현대위아나 지멘스, 하이덴하인 등의 업체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작업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 상당 기간 적응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기계업체 관계자는 “공작기계 등 금속가공 기계들은 설비투자이기 때문에 손바뀜이 심하지 않다”며 “당장 영향을 받는 반도체업계와는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산 공작기계와 계측기는 국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체의 연구소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어 장기적으로 완성차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일본 부품 의존도를 꾸준히 낮춰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당장 타격은 없다는 입장이다.

부품업체 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관계자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과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등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KB증권은 올해 들어 5월까지 일본산 부품 수입액은 3억1천만 달러로 국내 자동차 생산(163억달러) 대비 1.9%에 그쳤다며 당분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완성차업체들은 국산화율이 95% 이상이며 일본 이외 국가에서 부품을 조달할 수 있어 단기적 대응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한, 내연기관보다 전기차의 배터리, 수소전기차의 수소탱크 등 친환경차 위주로 일본산 소재 문제의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반도체 겹악재에 ‘신음’…“화이트리스트 제외까지”

반도체 업황 회복이 늦어지는 가운데 일본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직격탄’을 맞은 뒤, 이날 ‘화이트리스트’ 제외까지 닥치면서 반도체 업계는 연일 신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3가지 품목 규제가 반도체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어 사실상 화이트리스트는 신경도 못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미 규제가 시작된 3가지 품목 또한 처리 기간이 얼마나 될지, 수출 허가는 날지, 어느 정도 유효기간으로 허가를 내줄지가 모두 불확실해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다만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반도체 쪽에서 문제가 될 만한 건 웨이퍼 정도”라며 “이 제품도 일본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추가로 규제할 가능성이 높은 품목은 웨이퍼와 블랭크 마스크로 일본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각각 50%, 80% 이상을 차지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경로로 화이트리스트 관련 품목을 파악 중인데 백색국가 제외로 인해 원자재와 부품의 전반적인 수급 운영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체가 가능하더라도 소재나 장비를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총력 대응’을 선언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출규제와 관련해서는 전사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는 등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수출 규제 품목에 대해 재고를 적극 확보하고 있다”면서 “거래업체 다변화, 공정투입 최소화 등으로 생산 차질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생산 제품을 포함한 여러 개 업체의 소재들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반도체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4조원을 겨우 넘어서면서 하락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 디스플레이·배터리·화학, 시나리오별 대응책 강구…“상당히 혼란”

앞서 3가지 품목 규제에 영향을 받은 디스플레이 업계도 화이트리스트 제외 대응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영향을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가정을 두고 예측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일본의 전략물자 리스트 외에 비전략물자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고, 어떤 기업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다들 추측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소재나 장비 수입에 영향을 미칠지 나온 게 없다”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협력사와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한계도 있어 국산화 등 대응책이 있어도 개별적으로 밝히기는 부담스러울 가능성도 높다.

다만 LG디스플레이는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응해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기존 거래처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7월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 방안을 수립, 영향 여부 점검, 대체 거래처 발굴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업계는 3개 품목 규제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4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은 의존도가 높지 않지만, 파우치 필름과 바인더 등 일부 공정용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8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다만 “사업부에서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품목들은 규제 대상에 해당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면서 “긴장감을 높여 시나리오별로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이 최근 ‘구미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경북 구미시에 5천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것도 일본의 수출규제 확대에 대응해 국산화, 내재화를 강화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수출 규제가 확대된다면 원료 다각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SDI의 경우 LG화학과 비교해 일본산 의존도가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공급처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 밖에 기타 석유화학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파악된다.

화학사 관계자는 “PVC(폴리염화비닐) 첨가제 등 일본 제품을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대체 불가한 제품이 아니고 핵심 소재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스마트폰도 장기적 영향권…“부품가격 상승 우려”

스마트폰 제조업체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제조사들이 하반기 스마트폰 생산에 필요한 재고를 일정 수준 확보했고, 부품사도 다수 업체를 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9월 출시 예정인 갤럭시 폴드의 경우 디스플레이에서 화면 보호막 역할을 하는 투명 필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를 전량 일본 스미토모화학에서 납품받는 것으로 알려져 양산에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생산 물량 자체가 많지 않고, 갤럭시 폴드에 들어가는 폴리이미드는 불소 함량이 낮아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으로는 스마트폰에 쓰이는 모뎀과 프로세서, 이미지 센서 같은 부품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반적인 부품 가격이 상승하면 국내 제조사의 수익성과 점유율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 조달처가 다변화돼 있어 스마트폰 쪽에서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모뎀, 프로세서, 이미지 센서 등 핵심 부품 조달에 영향이 생길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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