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로 수분 섭취한 듯…전문가 "매일 밤 저체온증과의 사투 벌였을 것"
삼풍백화점·청양 금광 붕괴, 미국 하와이 요가 강사 실종 등서도 열흘 이상 후 구조 사례

지난달 23일 오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 인근에서 조은누리(14)양이 지인들과 함께 나들이를 하고 있다. 이 사진 촬영이 이루어진지 약 30분 뒤 조양은 일행과 떨어진 뒤 실종됐다. 청주 상당경찰서

인간의 생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전 국민을 안타깝고 애타게 했던 청주 여중생 조은누리(14)양이 실종 열흘 만인 2일 기적처럼 무사 생환했다.

지난달 23일 청주시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에서 가족, 지인 등과 등산에 나섰다가 실종된 조양이 어떻게 열흘간을 버틸 수 있었는지는 조사를 더 해 봐야 알 수 있다.

다만 이 기간 많은 장맛비가 내리면서 생존에 필요한 수분 공급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양이 실종된 열흘 동안 청주에는 단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비가 내렸다.

수색에 나선 사람들은 궂은 날씨를 원망했지만, 결국 빗물이 조양을 살리는 ‘은인’이 된 셈이다.

신희웅 청주 상당경찰서장은 “주변에 계곡이 있고, 다행히 많은 비가 내리면서 수시로 수분이 공급돼 생존이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평소 잘 다져진 조양의 기초 체력이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청주 모 중학교 2학년인 조양은 지적장애와 함께 자폐 증세가 있어 특수교육을 받아왔으나,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려 놀고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특히 키 151㎝의 다부진 체격에 수영선수로도 활약했다. 작년에는 소년장애인체전에 출전에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조양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 상황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생환기는 과거에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1995년 6월 29일 일어난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대표적이다.

119구조대와 경찰, 서울시는 물론 시민 자원봉사대가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50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해 6·25전쟁 이후 국내에서 최대 사상자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피해자 가운데 최명석(당시 20세)씨는 11일(230시간), 유지환(당시 18세·여)씨는 13일(285시간), 박승현(당시 19세·여)씨는 17일(377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중 최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소방수와 빗물을 받아 마시며 악조건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고 생존 비결을 밝혔다.

가장 나중에 구조된 박씨는 음식은 물론 물도 먹지 못한 극한의 상황에서 17일을 견뎠음에도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구조돼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삼풍백화점 이전의 최장 매몰 생존자는 1967년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지하 125m의 금광 갱 속에 갇혔다가 15일(368시간) 만에 구출된 광부 양창선(당시 36세)씨다.

양씨는 부인이 출근 때 싸준 도시락을 이틀간 나눠 먹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도시락통에 받아 마시며 허기를 채웠다.

구조대는 매몰 15일째 지하 121m 지점까지 내려가 양씨와 해후하고 안전캡슐을 이용해 무사히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에서도 3개월여 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5월 8일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하이킹 도중 실종됐던 물리치료사 겸 요가 강사 어맨다 엘러(35·여)가 자신의 자동차로부터 11㎞ 떨어진 숲에서 17일 만에 구조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일이다.

엘러는 길을 잃고 헤매다 벼랑에서 떨어져 다리에 골절상을 입는가 하면 산딸기 같은 과일과 심지어 나방, 벌레를 먹으며 연명한 끝에 수색 헬리콥터에 발견, 구조됐다.

지난해 태국에서는 동굴에 최장 17일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13명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6월 23일 팀원의 생일파티를 위해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을 찾은 이들은 갑자기 내린 비로 동굴 내 수로의 물이 불어나면서 조난됐다.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하면서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만 마시며 구조되기를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실종 열흘째 이들이 생존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고, 미 공군 구조대원 30명을 비롯한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사흘간의 구조작업 끝에 모두 무사 생환했다.

하지만 구조 전문가들은 조양의 생환기가 이런 전례를 뛰어넘는 ‘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연수 전 충북산악구조대장은 “홀로 버틴 조양의 생환은 기적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며 “실종 후 내린 많은 비가 수분 공급에는 도움을 줬겠으나, 몸이 젖으면 저체온증에 의해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 교육을 받은 산악인은 조난됐을 경우 동굴 등에 몸을 피한 뒤 물만 보충받으면 열흘 이상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며 “어린 나이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지만 조양이 나름대로 낙엽 등 주변 자연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해 견뎌낸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붕괴사고에 의한 조난은 일단 체온 유지가 기본적으로 이뤄져 식수만 공급되면 생존 가능성이 높고, 체력 고갈도 적다”며 “반면 조양은 추위를 견뎌내느라 체력 소모도 훨씬 컸을 텐데 기적이자 정신력의 승리라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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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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