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뷰]하늘에서 본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 옥산서원
[스카이 뷰]하늘에서 본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 옥산서원
  • 김용국 기자
  • 승인 2019년 08월 04일 21시 0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0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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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곳의 서원 중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을 포함해 5곳이나 경북 지역의 서원이다. 지역의 서원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스카이 뷰>를 통해 경북의 서원들을 하늘에서 다시 둘러봤다.

이번에 하늘에서 둘러 볼 서원은 경주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이다.

옥산서원은 경주 안강읍 옥산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彥迪,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1573년(선조 6)에 세워졌다.

옥산서원은 1574년(선조 7)에 ‘옥산(玉山)’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이 전국 47곳의 서원을 제외한 나머지 서원을 철폐할 때에 훼철되지 않은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회재는 중종 때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성리학의 정통으로 밝힘으로써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안강평야의 서쪽 자옥산 아래에 위치한 옥산마을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요, 효행의 마을로 이름이 높았다.

남쪽으로는 무학산, 서남쪽으로 자옥산, 서북쪽으로 도덕산, 서원 뒤쪽으로 화개산의 4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회재가 유유자적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난 후에 창건됐다.

그가 타계한 후 1572년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유림의 뜻에 따라 서원을 창건했으며, 1574년에는 선조에게서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며, 그 현판 뒤에는 아계 이산해가 쓴 또 다른 현판도 걸려 있다.

옥산서원은 회재를 모신 사당뿐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공간, 강학 공간, 서재 등 서원으로서의 형식적 공간을 갖고 있다.

정문인 연락문을 들어서면 누각인 무변루가 있고, 강당인 구인당의 양쪽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강당 뒤쪽에 서 있는 것이 회재를 모신 사당인 체인묘이다. 동재의 오른쪽으로 지어진 여러 건물들은 서원의 살림을 맡았던 곳이다. 옥산서원의 제향 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이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체인문, 체인묘, 전사청, 경각, 비각 등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강학 영역은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를 비롯해 구인당, 민구재, 암수재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끝이 없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무변루 편액의 글씨는 한석봉이 쓴 것이다.

무변루를 마주 보고 있는 구인당은 이언적이 쓴 ‘구인록’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이 현판도 한석봉이 썼다. 구인당은 강의와 토론이 열렸던 곳으로 서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옥산서원에는 2018년 2월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를 비롯해 동국이상국전집 등 고서 4000여 권과 호구단자, 명문, 도록 등 고문서 1156건, 책판 회재선생문집 1123판 등 총 6300여 점의 무형 및 기록유산이 있다.

최근에는 서원의 현대적 활용을 통해 전통과 현대문화가 접목하는 고품격문화 체험공간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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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기자 kyg@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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