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1833~1905)이 ‘비단길’로 명명하면서 사용되었다.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초원길, 사막길, 바닷길을 모두 지칭하나 처음에는 주로 사막과 오아시스 일대의 도시들을 거치는 교역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라고 부르며 당나라의 장안(시안)에서 로마까지의 장장 1만2천km(직선거리 9,000km)이다. 로마의 수입품들이 경주지역의 유적지나 유물로 발견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어있을 만큼 통일신라의 실크로드 영향은 컸다.

실크로드의 중국 쪽 출발점은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시안(서안)이다. 시안을 시작으로 제갈량이 죽은 오장원이 있는 바오지시를 지나 간쑤성의 텐수이시, 란저우시, 우웨이시, 장예시, 주천시, 자위관시, 둔황시와 신장의 하미시, 선선현, 투루판시, 우루무치시까지를 1차 적인 실크로드 루트이다. 특히 란저우시에서 둔황시까지의 약 900km의 좁은 협곡은 하서주랑르르 답사했다. 중국의 실크로드는 천산북로, 천산남로(서역북로), 서역남로로 구분하는데 천산북로는 감숙성 돈황을 거쳐 신장의 투루판과 우루무치, 이닝을 거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연결된다. 천산남로는 둔황, 옥문관, 하미, 투루판, 쿠얼러, 쿠처, 아크쑤, 카슈카르로 이어지는 2200㎞의 길을 말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단과 쿤룬산맥 북단의 길인 서역남로는 간쑤성의 둔황, 양관, 뤄창(若羌·누란국), 치에모(차말국·소완국), 민펑, 위텐(우전), 처러(책륵), 뤄포, 허텐(호탄·우기국), 예청(사차자합국), 사처(사차국), 카스(喀什·카슈가르)까지 2100km의 길로 한나라 때부터 이용됐던 문명의 교통로였다. 그러나 당대(唐代)에 접어들면 남로의 번성했던 오아시스 도시와 왕국들은 쇠퇴하고, 둔황에서 옥문관을 거쳐 쿠얼러, 쿠처, 카슈가르로 가는 서역북로를 주로 이용했다. 나는 둔황과 양관까지만 가고 나머지는 다음을 기약했다.

이번 실크로드 역사탐방에서 첫 방문지는 간쑤성의 성도인 란저우시였다. 란저우시는 중산교, 바이타산의 백탑사. 이슬람 사원 청진사, 우육면이 유명한 도시로 5호16국시대 걸복국인이 세운 서진(西秦·385년 ~ 431년)의 수도이기도 했다. 근교의 병령사(炳?寺)를 뒤로 하고 바이인(백은)시의 황허 석림을 답사했다.

황하석림에서 다시 우리는 전량, 후량, 남량, 북량 등 4개 왕국의 수도였던 우웨이시(무위)를 답사했다. 란저우시에서 약 280km인 우웨이는 고대 서강(西羌)의 땅이었다. 고장, 양주(?州)로 불린 우웨이는「무제의 위엄이 하서에 도달(武帝之威河西到達)」이라는 글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이곳은 뢰대한묘, 우웨이 문묘, 백탑사 유지, 천제산 석굴이 유명하다. 다시 우웨이시에서 250㎞ 가면 경북 2배 면적의 장예(장액)시가 나온다. 장예는 감주(甘州)라는 지명으로 알려진 곳으로 서하(1038~1227)시대에 건축한 와불(臥佛)로 유명한 대불사가 있으나 보지 못하고 칠채산의 ‘단하지모’라는 신비한 지형만 답사했다.

다음 행선지는 주취안(주천시)시를 지나 자위관(가욕관)시로 향했다. 가욕관은 동쪽의 산해관부터 시작된 만리장성이 서쪽에서 끝나는 곳이다. 드디어 둔황의 막고굴, 월아천과 명사산을 보게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인 막고굴은 다퉁의 원깡석굴, 뤄양의 룽먼(용문)석굴, 텐수이의 마이지산 석굴과 더불어 중국의 4대 석굴로 절벽에 366년부터 1,000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신라의 승려 혜초의『왕오천축국전』이 펠리오에 의해 발견되어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둔황의 유원역에서 선선까지 고속기차를 타고 가서 투루판의 고창고성과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을 답사하고, 우루무치로 향했다. 드디어 천산천지를 보았다. 천산천지의 기운을 받고 이스탄불까지의 실크로드 기행을 기원하면서 이번 역사탐방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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