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은 일어선다. 조선아 조심해라” 어릴 때부터 듣던 말로 우리 민족의 과거 수난사를 함축시킨 말이다. 동북아의 중심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 근접한 한반도의 수난사는 오래전부터 파란이 많았다.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강점기 36년의 식민지배와 미국과 구소련의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피 흘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었다. 그 결과 씻을 수 없는 분단의 선은 아직도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고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강대국들의 힘의 사주로 인해 조국분단의 비극까지 낳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그칠 줄 모르고 우리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켜오며 무수히 많은 침략과 수탈을 감당하고 자기의 말과 글을 온전히 지켜온 겨레이며, 한편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배달의 자손임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과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사태는 화이트리스트를 시작으로 우리 산업계와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파장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서도 대법원의 판결을 미루었다는 지난 정부와 달리, 언젠가는 부딪혀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과거사를 명확히 정리하고자 하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는 우리 산업계의 재편과 재도약의 기회를 가져 왔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 이기는 게 최선이다. 안보를 이유로 경제를 무기화하는 아베의 약은꾀는 우리 산업 전반에 대한 위기를 넘어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베의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수출 규제의 배경에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넘어 아시아의 패권을 주도하여 제2의 대일본제국을 건설하려는 허황된 야욕이 깔려 있다. 아베가 그토록 원하는 전쟁이 가능한 나라, 평화헌법 개정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이용해 신일본제국이 되겠다는 야망이다. 과거 식민지 확장에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 되었고 일왕의 무조건적인 항복과 패망은 일본의 치명적인 상처로 남았다. 따라서 패전국으로서의 구긴 자존심의 회복이 개헌의 이유이며, 과거에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참회보다 호시탐탐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기회를 엿보는 아베의 군국주의 망상을 이번 행태로 알 수 있다.

첨단기술과 전자부품 등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결정의 배경에는 1965년 한일협정이 있다. 전후 단절된 외교를 거센 국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상화한 한일협정은 침략과 가해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피해자의 보상, 위안부 보상 등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어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오늘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우리의 아픈 과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도 전쟁범죄와 과거사에 대한 반성보다 음흉한 침략의 근성을 들어내며 정치적 목적을 위한 무역보복을 감행하는 것은 아직도 강점기시대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우리를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신뢰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믿음이다. 신뢰가 깨어지면 상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국가이건 사람이건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저버리는 신뢰라면 나머지 화이트리스트 대상 국가들과 국제사회가 일본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보장할까. 언제든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해 ‘감탄고토’하는 불신은 우리를 넘어 글로벌경제에 영향을 주어 틀림없이 자신들에게 경제적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결국 일본은 우리나라를 적국으로 간주하였다. 무역보복은 경제 전쟁을 선전포고한 것이다. 총칼은 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기필코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주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방, 경제,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당장은 힘들지만 5천 년의 저력을 다시 모아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국민의 힘과 지혜를 총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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