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장인 피소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였다. 어느 날 자기 휘하에 있는 두 병사가 말먹이 풀을 베기 위해 야외로 나갔다. 저녁 때 돼서야 한 명만 돌아왔다. 피소는 “다른 한 명은 어떻게 됐나?” 물었다. 혼자 돌아온 병사가 필시 다른 병사를 죽였을 것이라고 판단, 혼자 온 병사에게 사형 명령을 내렸다. 사형이 막 집행되려고 하는 순간 행방불명됐던 다른 병사가 돌아왔다. 사형 직전에 살아난 병사는 뒤늦게 나타난 병사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형 집행관은 사형 집행을 중지하고 두 병사를 데리고 피소에게 갔다. 세 사람을 마주한 피소는 해결이 잘 됐다고 기뻐하기는커녕 화난 목소리로 세 명 모두에게 사형 명령을 내렸다. 애매한 목숨을 죽게 할 뻔했던 자신의 판단이 창피스러웠다. 그러나 창피가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뀐 피소의 원칙주의는 아집으로 폭발했다. “혼자 돌아온 병사의 사형명령은 그대로 유효하고, 뒤늦게 온 병사에겐 먼저 온 병사를 죽게 할 뻔한 죄로, 사형집행관에겐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명령 위반죄”를 뒤집어씌웠다. 피소의 사례는 지나친 원칙주의는 전횡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르시아 대제국을 완성한 다리우스 황제도 지나친 원칙주의자였다. 다리우스가 스키타이 원정길에 막 출발하려 할 때 측근 신하가 다리우스에게 간청을 드렸다. “폐하, 이번 원정에 신의 세 아들이 한꺼번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한 명 만이라도 빼주실 수 없겠습니까.”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세 아들 모두 남게 하겠소”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신하는 세 아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세 아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모두 목이 잘린 시신이었다. 다리우스는 평소 국가 통합과 솔선수범을 자신의 생명처럼 중히 여겼다. 세 아들의 참수는 자신의 솔선수범을 어겼다는 데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확정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 우선주의가 아집이라는 ‘원칙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국적 혜안이 필수다. 특히 스트롱 파이터들이 군림하는 4강 외교 링에선 변통 없는 원칙주의는 좋은 맷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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