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이 손끝이
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미인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을 비집고 들어가
쪽잠을 들기도 했다




<감상> 연인이긴 한데, 격정적이지 않고 조금 민감한 사이라고 할까요. 이유 없이 마음 상하는 날이 이어지고 작은 상처들도 덧나기 시작하죠. 손을 베인 미인은 ‘가렵다’에 초점이 있어 대수롭지 않는 반면에 나는 ‘아프겠다’에 메여 있어 당신을 더 걱정합니다. 여름빛에 얼굴이 검어지듯 서로 무심하게 한 계절이 지나가기도 하죠. 어렵게 새벽의 파랑이 몰려오듯 조그마한 곁을 비집고 들어가 쪽잠을 같이 들기도 했는데, 잠시 마음이 통하기도 했는데, 밤의 끝에서 먼저 이별을 걱정해야 하는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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