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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의 인문명리] 한무제와 장건의 실크로드 개척
[류동학의 인문명리] 한무제와 장건의 실크로드 개척
  •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 승인 2019년 08월 12일 15시 2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3일 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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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실크로드 역사와 함께한 인물은 한무제(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와 장건이다. 실크로드 지역을 장악했던 흉노(匈奴)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부터 5세기 혁련발발이 섬서성 지역에 세운 하(夏·407~431)의 멸망까지 몽골 및 중국 북부 지역에 존재한 유목제국이다. 한무제는 한고조 유방의 백등산(산시성 다퉁 부근)전투의 치욕 이후부터 한 경제까지의 한과 흉노의 화친정책을 버리고, 묵돌 선우(기원전 206~기원전 176)에 의해 서쪽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밀려난 대월지와 동맹을 맺어 흉노를 협공하기로 하고 기원전 138년 장건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장건은 흉노에 잡혀 흉노여인과 결혼하여 자식도 두었지만 10년 만에 수행원 감보와 처자와 탈출하여 대완국(현재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과 대월지국 지역을 갔으나 동맹은 실패했다. 장건은 기원전 128년에 실크로드 남로와 청해성을 통해 오다가 다시 흉노의 포로가 되어 1년 정도 머물다가 드디어 13년 만에 기원전 126년 장안으로 돌아왔는데 이것이 장건의 1차 서역원정이다.

이후 장건은 대장군 위청(?~기원전 106년)을 따라 흉노와의 전쟁에 참전한 공으로 박망후(博望候)에 봉해졌으나, 비장군 이광과 함께 장군으로 출병했다가 실패해 박망후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무제는 기원전 119년 장건을 오손(烏孫)으로 파견했다. 무제는 대완 지역에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명마, 곧 한혈마(汗血馬)가 있다는 장건의 정보를 바탕으로 기원전 104년 장군 이광리를 보내 한혈마를 입수하기도 했다.

흉노와의 전쟁을 선포한 한무제는 기원전 133년 마읍(산서 안문군)매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기원전 129년 이후 위청이 오르도스지역을 공격하여 삭방군을 설치했다. 위청의 누나는 무제의 황후 무사황후(위자부)이다. 위청은 생질 곽거병과 함께 무제 시기 흉노에서 한의 우세로 역전되는 한·흉노 전쟁을 대표하는 장군이다. 기원전 119년에는 위청과 곽거병의 활약으로 이른바 하서 4군인 감숙성의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을 설치하여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을 개척하였다. 이후 장건은 오손과 친교하고 동행한 부하들을 대완, 강거, 대월지, 대하, 안식(이란), 신독(인도) 등으로 파견하여 한과의 교류를 성사시켰다. 장건은 기원전 115년 귀국했다. ‘실크로드 개척의 선구자’장건은 기원전 114년 세상을 떠났다. 장건의 묘는 중국 산시(陕西)성 한중시 청구(城固)현 서쪽 박망진에 있다. 둔황에는 7세기에 그려진 장건출사서역도라는 벽화가 있다.

이광리는 대완국(페르가나)에 한혈마를 구하러 갔으나 실패하고, 기원전 104년 2차 원정에서 대완국을 정벌하고 한혈마를 구해 돌아왔다. 한무제는 16세에 재위에 올랐고 향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은 55년이다. 그는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멸망시켜 한 4군을 설치했고, 남쪽으로 베트남 북부지역과 중국 남부지역인 남월과 서남이지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는 실크로드을 개척했다.

시안 북서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있는 ‘무릉’은 ‘한무제 유철’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무릉의 주변 사방에는 비빈과 공신, 궁녀의 배장묘가 분포돼 있는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혜성처럼 등장하여 20살에 장군으로 실크로드의 하서주랑을 개척하고 24살에 사망한 ‘곽거병’의 무덤이다. 곽거병이 하사한 술을 부하들과 같이 마셨다고 주천(酒泉)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곽거병의 이복동생은 소제와 선제시절 무려 20년간 권력을 장악했던 곽광이다. 한무제시기는 비단길의 장건, 유학자 동중서, 역사가 사마천, 삼천갑자 동방삭의 설화를 남긴 동방삭, 문학가 사마상여, 경제전략가 상홍양, 장군 위청과 곽거병 등이 활약했다. 이번 실크로드 답사는 한무제와 장건, 위청, 곽거병, 이광리의 향기가 묻어나는 감숙성의 하서 4군과 신장의 투루판과 선선국을 탐방한 한제국의 서역 개척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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