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 없이 바닷가 민박에 들러
하룻밤 자고난 아침

비누와 수건을 찾다가 없어서
퐁퐁으로 샤워를 하고 행주로 물기를 닦았다

몸에 행주질을 하면서
내 몸이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뼈와 피로 꽉 차 있는 가죽그릇
수십 년 가계에 양식을 퍼 나르던 그릇

한때는 사람 하나를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1960년산 중고품 가죽그릇이다

흉터 많은 가죽에 묻은 손때와
쭈글쭈글한 주름을 구석구석 잘 닦아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오래오래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감상> 생물에 뼈와 피와 살갗이 없는 몸을 생각할 수 있을까. 시인은 몸에 행주질을 하면서 자신의 몸이 가죽그릇이라 생각한다. 수십 년 가계에 양식을 퍼 나르던 그릇은 당연히 쭈글쭈글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중고품 가죽그릇이지만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담아 왔다면 좋은 그릇임에 틀림없다. 몸에 살이 빠져 나가고 가죽이 벗겨지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증거, 결국 우리네 허물은 벗겨지고 자신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자.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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