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식 주민소환 청구 가능, 소환 대상자는 방어권조차 없어
포항 오천읍 주민 SRF 운영 관련 시의원 소환 두고 찬반 엇갈려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 참여 확대 및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 제고를 목적으로 제정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 오히려 주민 갈등의 원인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특정한 목적을 갖고 주민소환제도를 악용할 경우에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없어 주민소환대상자는 결과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여서 법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최근 포항시가 추진하고 있는 SRF(생활폐기물 에너지화시설) 운영을 반대해 온 포항시 남구 오천읍 일부 주민들이 지역구 포항시의원 2명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민소환을 청구키로 하고, 현재 서명운동을 전개 중이다.

이런 가운데 12일 오천읍 20여 개 자생단체장들은 포항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소환투표 강력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이 입장문에서 “주민소환으로 인해 충절의 고장 오천읍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수 있으며, 지역이 사분오열되는 데다 관광객 감소 등 막대한 경제적 소실이 예상된다”며 “지역 주민 간 갈등만 초래하는 주민소환투표를 강력반대한다

또 주민소환청구의 원인을 제공한 SRF시설의 신뢰 있는 환경대책 강구 및 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처럼 주민소환제와 관련 주민 갈등 우려가 높아진 가장 큰 원인은 지난 2007년 시행에 들어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상의 한계에 있다.

이 법과 동 시행령은 법 제정 목적과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인 수 등의 요건만 갖췄을 뿐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나 사유는 아예 명시하지 않았다.

즉 이 법에 따를 경우 주민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이유에 대해 주민소환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법 제정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2004년 지병문 의원과 2005년 강창일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률안에는 주민소환 청구사유가 명시됐지만 2006년 이영순 의원이 대표발의안부터 청구사유가 사라진 뒤 국회 행자위 대안(현행 법안)에서도 청구사유 없이 제정됐다.

국회 발의안을 확인한 결과 지병문 의원이 대표발의안 에는 청구사유로 △법령 위반·직무에 관한 의무 위반 및 태만·지방자치법 규정 위반·주민투표법 위반 등이, 강창일 의원 안에는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또는 그 밖의 위법·부당한 행위 △지방의회의 비효율적·비합리적인 운영으로 인해 의회운영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로 명시돼 있다.

이처럼 국회가 자신들과 상관없는 주민소환제 법을 발의·제정하는 과정에서 청구사유를 명시하지 않으면서 지역 주민들만 주민소환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게 될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주민소환대상자에 대한 방어권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과 법을 악용해 주민소환을 청구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적법하게 진행될 경우 선관위는 소환대상자에게 서면 소명(500자 이내 소명요지 및 소명서)토록 해놓았지만 이 소명요지와 소명서는 주민투표 공고 시 게재 및 주민투표 공보물에 동봉하는 데 그친다.

따라서 소환대상자가 실질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권한은 동법 19조 주민소환투표 운동방법 규정에 따라 주민투표 선거운동 기간 중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게 전부인 셈이다.

벌칙 규정 역시 주민소환청구 절차상의 위배사항에 대해서만 규정해 놓았을 뿐 법률상의 청구사유가 명시되지 않으면서 법을 악용해 주민소환 청구를 하더라도 주민소환대상자는 법적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법률상의 미비점으로 인해 주민들은 법령에서 정한 청구인 수만 채우면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주민소환이 가능하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소환대상자는 별다른 호소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 지역 법률전문가는 주민소환 청구사유가 명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현행법상 주민소환 청구인 수를 정해 무분별한 주민소환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특정한 의도 아래 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측도 “법령상 청구사유를 명시해 둔다면 업무처리가 한층 수월하겠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주민소환 청구요건만 충족하면 주민 투표를 실시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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