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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조국과 비장미
[삼촌설] 조국과 비장미
  •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 승인 2019년 08월 13일 17시 3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4일 수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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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대체로 아름다움의 범주에는 숭고미와 우아미, 골계미가 있다. 또 한가지 ‘비장미(悲壯美)’라는 것이 있다. 숭고미는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우아미는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골계미는 풍자와 해학의 아름다움으로 대충 뭉뚱그려진다.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비장미의 근본 바탕이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인 것이다.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ㆍ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ㆍ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수이여진멸(讐夷如盡滅ㆍ원수를 모두 멸할 수 있다면)/수사불위사(雖死不爲辭ㆍ비록 죽음일지라도 사양하지 않으리라)” 이순신 장군의 시 ‘진중음(陣中吟·진중에서 읊다)’이다. 임진란 때 왜군이 한양으로 진격하자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몽진 길에 오를 정도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순신 장군이 바다와 산을 두고 맹세하며 한탄한 시다. 비장미의 진수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가 이 시에서 따온 ‘서해맹산(誓海盟山)’이라는 성어로 비장함을 보였다. 장관으로 지명된 9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해 “서해맹산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당면 개혁 과제인 법조 개혁을 맹세코 이루겠다는 조 후보의 각오가 읽힌다. 조 후보자는 최근 SNS에 일본어로 ‘우리(한국인)의 DNA는 이순신 정신이 녹아 있다’고도 썼다. 문재인 대통령도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를 언급했다.

비장함은 현실 세계를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일본 경제 보복에 동학 농민군의 ‘죽창가’를 환기 시키고,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에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시를 인용한 것은 모두 극한적이었던 당시 상황과는 왠지 격에 맞지 않는 감정적 비약으로 보인다. 지금 나라가 처한 현실이 어렵긴 하지만 비장함의 남용(濫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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