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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인문학] 엄마는 갱년기란다
[돌봄의 인문학] 엄마는 갱년기란다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08월 15일 16시 3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6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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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일어나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던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제 그만 일어낫!” 놀란 아들이 벌떡 일어나 앉는다. 무슨 일 있느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들의 눈길에 짜증이 묻어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변했다’거나 ‘늙어서 그렇다’거나 대체로 이런 말로 가족들은 엄마의 변화를 비하한다. 그야말로 엄마는 무조건적인 사람, 그 모든 것을 희생으로만 끌어안는 사람이라고 단정해버린 데에서 온 결과이다. 여자들은 나이 50을 전후로 폐경을 겪게 되고 그 전후로 갱년기를 겪게 된다. 그 시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여성호르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것인데 신체적으로는 안면 홍조라든가 발한, 불면, 관절통 등이며 정신적으로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을 수도 있다. 흔히 이 시기를 제2의 사춘기라고도 하는데 떠도는 말에 예전에는 북에서 중2생들 때문에 못 쳐들어왔지만 이제는 갱년기 여성이 겁나서 못 쳐들어온다는 유머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사춘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축하 파티를 열어주는 반면 갱년기를 시작하는 여성에게 가족은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별나다는 식의 불편감을 드러낸다. 더욱이 여자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느니 할머니가 됐다느니 하는 말로 놀리기까지 한다. 그 결과 여성들은 자신의 변화를 숨기거나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머지 혼자 앓고, 혼자 극복하려고 온갖 고심을 한다.

최근 폐경(閉經)을 완경(完經)이라는 말로 대체하면서 여성들의 신체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분위기와는 별개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 긍정적 지지를 하지 않으므로 여성은 변화를 숨기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갖은 몸부림을 한다. 결국 갱년기에 대처하는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여성들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갱년기는 숨겨야 할 나쁜 변화가 아니다. 당당하게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고 가족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여성은 건강한 폐경을 맞을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완경이 되는 셈이다. 어떤 불의의 결과가 갱년기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그녀가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말해야 한다.

“…엄마가 아무래도 갱년기인 거 같애, 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어. 지금 엄마는 너의 사춘기 때처럼 기분이 그래. 더욱이 몸의 변화가 나쁜 쪽으로 나타나서 잠도 안 오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도 해. 엄마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증상들이 나타나서 엄마도 간혹은 감당하기가 힘들어. 그러고 싶지 않지만 너의 행동에 자꾸 화가 나. 네가 일찍 일어나 같이 식탁에 앉고 같이 과일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강요하지 않을게. 그러니 너도 엄마에게 바라는 것에 대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어.”

나 갱년기야, 엄마 갱년기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 갱년기를 빌미로 찾아오는 많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반감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보호받듯, 갱년기 여성들도 그래야 한다. 한 몸으로 여러 삶을 살아온 고단했던 갱년기 여성들이여, 이제 자신을 위한 파티를 하자, 갱년기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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