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대동 '애국지사 8인' 만세운동 결실
대구 미대동 '애국지사 8인' 만세운동 결실
  • 전재용 기자
  • 승인 2019년 08월 15일 19시 3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6일 금요일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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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위, 기념비 높이 변경 통해 6월 2차 심의서 사업허가 받아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
15일 오후 대구 동구 미대동에서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동구청장, 유가족, 시의원, 구의원,주민들이 참석해 제막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속보=대구 미대마을 애국지사 8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건립사업이 결실을 맺었다. 미대마을3·1독립만세운동기념비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대구시 기념비건립 심의에서 한 차례 반려(본보 4월 22일 자 7면)된 이후 해당 사업을 보완한 결과다.

15일 오후 동구 미대동 747-18에서 대구지역 내 유일한 마을 단위 독립만세운동인 ‘미대마을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제막식이 진행했다. 자연석(오석)으로 제작된 기념비 앞에 애국지사 유족들을 비롯해 배기철 동구청장, 시·구의원 등 100여 명이 모였다. 1919년 4월 26일과 28일 미대동 여봉산에 올라 만세운동을 벌인 채봉식·희각·갑원·학기·경식·명원·송대, 권재갑 등 8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기념비에도 애국지사 8인의 이름과 만세운동 당시 나이가 새겨져 있었다.

유족대표로 나선 채갑원 애국지사 손자 채남기씨는 “기념비건립에 애써준 추진위와 비용을 마련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애국지사 8분의 소진과 의지가 용기 있는 행동으로 옮겨졌고, 그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복절에 맞춰 세워진 기념비는 앞서 독립유공자들의 만세운동 기간에 맞춰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한 차례 불발됐다. 대구시가 지난 4월 15일 열린 심의에서 기념비의 큰 규모와 안전성 검증 등 이유로 해당 사업을 반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추진위는 기념비 높이를 4.1m로 변경하고, 구조개선과 함께 안정성 검사를 진행했다. 기념비건립사업비용도 3500만 원에서 약 1000만 원이 추가됐다.

사업에 대한 보완을 마친 추진위는 지난 6월 25일 열린 2차 심의에서 대구시로부터 기념비건립사업허가를 받아냈다.

최주원 사무국장은 “계획했던 것보다 기념비건립이 늦어졌지만, 광복절에 관계기관과 함께 공식적으로 기념비제막식을 진행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봉식·희각·갑원·학기 등 4명과 채경식·명원·송대, 권재갑 등 4명은 각각 1919년 26일과 28일 오후 10시께 당시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동구 미대동) 마을 인근 여봉산에 올라 다음날까지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후 일본군과 경찰에 붙잡혀 같은 해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각각 8월(채봉식, 채희각, 채갑원, 채학기)과 6월(채경식, 채명원, 채송대, 권재갑)의 징역형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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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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