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잡아 칼을 갈았다

무뎌진 날들이 숯물에 배어 흘러내렸다

주기적으로 갈아야 한다지만

선득한 날이 싫어

좀체로 칼 갈지 않고 살았다

그냥 살아야지, 하고

작정하자마자 금세 예리해진 칼날

그 가운데 움찔했던가

바로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다행이다

내가 먼저 베였다





<감상> 날을 잡아 칼을 가는 시인은 무뎌진 날들에서 그동안 착하게 산 날들을 떠올립니다. 험한 세상에서 주기적으로 칼을 갈아야 살아남지만, 섬뜩한 칼날이 싫어 칼을 갈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나요. 주위에서 착한 사람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날아드는 날카로운 칼날에 손가락이 베이고 마음은 상처투성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손가락만 베인 것이, 내가 먼저 베인 것이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합니다. 남에게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있거나, 휘두르고 떠나간 사람은 그 칼날에 자신이 베일 것입니다.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 마시고, 상처 준 이를 보듬고 살아갑시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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