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순회취재팀장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얼마 전 대구의 한 기초단체장을 만났는데, 대구시 신청사 유치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후보지로 내세운 입지를 다녀간 언론인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는 이야기도 보탰고, 신청사 후보지에 대해 새롭게 떠오르는 ‘다크호스’라고 극찬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신청사 유치에 푹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청사 유치’ 외에는 다른 이슈가 끼어들 틈이 아예 없어 보였다.

신청사 존치와 유치를 놓고 벌이는 대구 4개 지자체의 경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전쟁’이 됐다. 허용한 기준을 넘어선 현수막에서부터 약속한 방법을 넘어 엘리베이터 미디어보드와 전광판, 영화관에서 유치 홍보 영상물을 송출하는가 하면, 지자체 소식지에까지 단체장이 신청사 유치에 ‘올인’했다는 의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신청사공론화위원회가 정한 감점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과열 유치 행위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연말 신청사공론화위원회의 최종 입지 발표에서 탈락할 경우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이고, 존치나 유치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치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의 표를 먹고 사는 기초단체장이기에 더 그렇다.

9월 28일 후보지 선정 기준안이 발표될 경우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도 가세할 것이고, 과열유치행위는 극에 달할 것이다. 신청사 존치나 유치를 희망하는 4개 지자체의 공무원들까지 가세하면 행정력 낭비라는 부작용도 발생할 것이다. 거기에 쏟아부은 예산 낭비 논란과 더불어 심각한 후유증도 예상된다.

생뚱맞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동심이 꿈꾸는 대구시 신청사의 모습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대구시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입상한 91명의 초등학생이 그린 대구시와 신청사의 모습들을 마주하면서 무릎을 칠 정도로 기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등 4학년 학생은 지구의 운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싸우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그려 넣은 ‘히어로가 돼주는 대구시청’을 주제로 은상을 받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민원이라도 히어로가 돼 해결해주는 대구시청이 돼 달라는 소원을 그렸다고 이 학생은 설명했다.

금상을 받은 6학년 학생은 대구시청이 대구시민과 더 가깝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길이가 매우 긴 에스컬레이터를 넣었다. 또 유네스코 음악창의 도시인 대구를 표현하기 위해 건반을 그렸는데, 검정 건반 위에는 ‘민원 해결’ ‘행복 대구’ ‘세계 대구’를 새겨 놓기도 했다. 대상 수상자인 초등 3학년 학생은 대구를 상징했던 과일 사과를 중심으로 도시브랜드 슬로건 ‘컬러풀 대구’를 비롯해 ‘섬유 도시’ ‘대구 10미(味)’ ‘친환경 도시’ ‘대구 FC’ 등 대구의 상징들을 다양한 색감으로 조화를 이뤘다. 사람이 모이는 친환경 도시 대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은상을 받은 한 초등학생은 대구의 명산 팔공산을 연상해 대구시청의 모습을 상상했다. 마천루같이 멋있는 대구시청을 표현하기 위해 뾰족한 첨탑같이 그려 넣기도 했다. 은상 수상자인 다른 학생은 코끼리 모양의 대구시청 건물을 표현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끼리 모양에 알록달록하면 좋겠다는 염원도 담았다.

어린이들은 미래 대구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많은 학생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그림에 녹여냈다.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대구시 신청사의 모습도 염원했다.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 순수함을 어른들도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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