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북포럼] 삶의 길
[새경북포럼] 삶의 길
  •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 승인 2019년 08월 18일 16시 1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9일 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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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중략)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이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김소월의 ‘길’이란 시의 일부이다.

그렇다. 공중에도 길이 있고 바다에도 길이 있다. 갈 길이 많은 사람도 있고, 길을 못 찾아 방황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길을 가다 보면 잠시 쉴 때도 있고, 오랫동안 쉴 때도 있다. 길 위에서 잠든 때도 있다.

갈래 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막다른 길에 닿아서야 되돌아올 때도 있고, 깊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다.

소낙비를 만나 갑자기 흠뻑 젖을 때도 있고,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 다칠 때도 있고, 수렁에 빠져 온몸으로 허우적거릴 때도 있고, 불어난 개울물을 건너다 한참을 떠내려갈 때도 있다.

친구를 만나 동행할 때도 있고, 강도를 만나 빈 몸으로 가야 할 때도 있고, 그 죽일 놈의 사랑 때문에 울면서 길을 갈 때도 있다.

때로는 집에 두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워 가던 길을 되짚어 옛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있는 사람, 길 위에 있는 사람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사람.

집에서 멀어진 사람은 그만큼 돌아와야 할 길도 멀다는 것을, 모든 길은 집으로 향한 길인 것을. 되돌아가는 사람을 보고 앞섰다 자랑 말고, 잠든 이 보더라도 게으르다 비웃지 마라.

우리 모두 한때는 삶에 지쳐 길에서 잠들어 있었기에. 그들도 언젠가는 깨어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편히 쉴 것이기에. 미운 이 때문에 늦어졌다 탓하지 말고, 사랑하는 이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고 원망 마라.

그들이야말로 한때 우리를 위해 그토록 먼 길을 아무런 불평 없이 되돌아가 준 바로 그 사람이다. 길 위에서 내가 만난 사람. 그들이 바로 길이다. 길은 언젠가 길 그 자체가 되고 만다.

어저께 그래도 사회 지도층에 있었던 한 건장한 후배가 길을 잃어서인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다. 한때는 많은 사람이 잘살 수 있는 길을 열어보겠다고 앞장섰던 사람이라 더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 길을 잘 찾아가던 사람이, 남보다 어려운 길도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하던 사람이 어쩌다 길을 잃었는가.

상처받은 영혼들이여, 이 슬픔과 고통의 길 위에서 한 번쯤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

언젠가 소풍 끝나는 날 돌아가야 할 몸. 길이 멀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도 있으리라. 지친 삶 모두 내려놓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사랑을 다시 배우고 살면서 길을 찾을 일이다.

사랑은 품는 것. 앞에서도 품고, 뒤에서도 품고, 몸으로 가슴으로 체온으로 녹여주는 것.

사랑은 표현해야 하는 것.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그리하여 마침내 뒷모습까지 내맡길 때 진정한 평안함과 따뜻함을 서로 나눌 수 있다. 그 사랑의 힘이 길을 찾는 원동력이다.

우리가 길을 찾는 일은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인생의 큰 기쁨도, 큰 아픔도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다가온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도 가까운 데 있다. 길은 가까운 데 있다. 길에는 발길도 있고 손길도 있고 눈길도 있다.

앞길이 막막할 때는 발길을 아무렇게나 돌리지 말자. 잠시 숨을 고르고 따스한 눈길,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가까운 사람을 끌어안아 보자.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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