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와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명백히 위반한 보복적 성격이 강하다. 이는 과거사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한국에 관철되지 않은 상황이 경제보복으로 확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산업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한·미·일 안보협력마저도 흔들고 있다. 더욱이 한국 내 소비자들에 의해 확산되고 있는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은 정부에서 민간차원으로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경제력을 보복의 수단으로 압력정책을 전개한 반(反)아베 기류는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비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전쟁의 아픔과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을 향해 끊임없이 경고등을 울리고 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한일 간 제도화된 협력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현시점에서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의 경제 전면전은 사실상 시작되었다. 지난 12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와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맞대응으로 일본을 수출 심사에서 우대하는 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양국 간 ‘넌 제로섬게임(non zero-sum game)’의 양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교역 리스크가 고조될 경우 한일 양국은 불확실성이 커져 승자도 패자도 없는 양상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감정적인 맞대응보다 냉철하면서도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일본 내 반(反)아베 세력과의 연대이다. 일본 경제보복 조치로 양국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강대강(强對强) 카드가 남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는 연대하여 반(反)아베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NO 아베’ 집회와 ‘평화의 소녀상’ 예술제 전시 중단을 비판하는 시민의 움직임이 연대하여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지난 4일 신주쿠(新宿) 일대에서 개최된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반(反)아베 시위와 연대’할 것을 제안하면서, 한일시민단체 반(反)아베 연대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는 일본 내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 경제 침략, 평화 위협을 반대하는 양심세력과 연대하여 ‘반(反)일’이 아닌 ‘반(反)아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둘째, 실효성 있는 대안 전략의 제시이다.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일 정책 기조는 아베 정권이 지금까지 발표한 일련의 수출규제 조치들을 조속히 철회하고, 대법원 판결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당사들과 양국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도록 협의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어기고 있다’는 논리로 경제보복의 정당성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확전은 원하지 않지만, 한국 상품이나 관광객 등의 불합리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맞대응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현시점을 한국 산업의 대일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운영 중인 일본 수출규제 대응 장관급협의체를 중심으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설한 소재·부품·장비 경쟁위원회는 현장 기업들의 다양한 경제활력 모델을 기반한 실효성 있는 대안 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제사회에서의 다자채널을 활용한 출구 전략이다.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여 국제사회에 일본 경제보복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외교적으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 놓아야 한다. 한일 외교당국 간 채널을 통한 협의 재개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조심스럽게 나타나면서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고 있지만, 한일 정상이 당장 마주 앉을 만큼의 여건은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달 말 중국 베이징 교외에서 개최하는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담에서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러시아 동방경제포럼(9월 4~6일), UN 회의(9월 17일), ASEAN+3 정상회의(10월 31일) 등과 같은 줄줄이 이어지는 정상급 다자외교 무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의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외교적 해법 모색의 일환으로 다자채널을 활용한 출구 전략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