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넘는 말이 아니고
아직은 문턱을 넘고 싶지 않다는 말

고장 난 로봇청소기처럼 덜컹거리는 어깨뼈를
가만가만 쓸어달라는 말
남은 한 걸음 사이를 한없이 늘이고 싶어서
울돌목처럼 빠른 감정의 흐름에 맞불을 놓는 말

사납고 싶지 않은 사나운 말
진짜 끝인사는 혀 밑에 숨겨둔 끝에서 두 번째의 말
깨물어 붉어진 잇자국처럼
아직은 피멍이라도 남겨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

비수의 안쪽 날을 시퍼렇게 들이 미는데
칼날의 이빨만 왕창 내려앉은 말
한 움큼의 비명을 향기로운 꽃처럼 당신에게 뿌리는 말

슬픔의 진자운동이라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 보편적 / 고백적
이별 유예선언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말

이제 정말 끝이야





<감상> 사람 사이에, 특히 연인 사이에 “이제 정말 끝이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겠어요. 끝이라는 말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맞불을 놓고, 끝이 아니길 바라는 반어적인 말이고, 마지막 절규로 들리는 말이네요. 슬픔이라도 좋으니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이별을 유예시키고 싶은 첫 마디이죠. 애초에 처음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므로, 끝이라는 말 때문에 오히려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으면 좋겠어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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