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기획자(ART89)

무더운 여름, 아이들이 서울에 있어 겸사겸사 전시를 관람하고 다니고 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박서보’展이 열리고 있었다.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모더니즘 형식주의 및 추상 미술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박서보 전시는 1950년부터 현재까지 원형질, 유전질(허상), 묘법 등 시기별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1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연필로 그린 ‘묘법. No.10-79-83’이 1026만 홍콩달러(약 14억70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되었다.

‘단색화’는 서구적 명칭으로 ‘모노크롬’ 또는‘미니멀리즘’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비평가에 의해 서구 사조와는 다른 한국적인 미술로 재해석한다.

서울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 展

‘미니멀리즘’ 회화의 정의(다음)를 찾아보았다.

‘미니멀리즘은 서정적이거나 수학적인 구성도 화가의 개인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단색화’는 이와 다른 형식을 보여주는데, 단색(또는 본질만 남는) 속에 묻어나는 또 다른 색(마음)이 들어있다. 같은 색을 칠하더라도 가슴과 몸에 베어져 있는 밑 색이 깔아져 있는 것이다. 이 밑 색에는 작가들의 삶과 우리의 정서가 담아져 있다. ‘단색화’는 한국의 미술이다.

‘2000년도에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展>도록 영문판에서 한국의 단색화를 가리켜 Dansaekhwa로 처음 표기 하였다’ - 1970년대 한국 단색화의 태동과 전개. 윤진섭 글 중

‘박서보’ 작가의 작품(‘묘법’ 중) 제작 방법을 보면 물을 먹은 한지에다 두드리거나 선을 긋고 지우고, 또 두드려… 들어가고 나오는 선(線)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무한히 반복한다.

임영수 作 ‘인상 - 무심애(無心哀)

한지의 독특한 물성은 작가와 작품이 일체가 되고, 반복되는 무심(無心)의 행위는 삶의 치유와 희열이 된다.

작가의 작품은 정면, 측면 등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한지에 스며든 색은 미묘한 감정의 변화처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색이 된다.

‘박서보 <묘법>의 본성이 자연의 순응이라는 점은 색채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어에는 다양한 색채어휘가 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배울 때 가장 어렵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어떤 대상의 색채를 지시하는 형용사이다. 예컨대 블랙, 화이트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서양의 색상환(色相環)과는 다르게 한국의 색은 ‘흰색’ ‘검은색’ 이외에 ‘거무스름하다’ ‘희끄무레하다’등 한국인이 아니면 그 참뜻을 이해하기 힘든 중성적 어휘들로 가득하다.

빨간색과 관련된 색채어휘는 ‘빨갛다’ ‘시뻘겋다’ ‘발그레하다’ ‘불그스레하다’ ‘불그무레하다’등 국어사전에 명시되어 있는 단어만 해도 60여개다. - 박서보의 묘법세계: 자리이타(自利利他)적 수행의 길. 변종필 글 중.

이년 전쯤 전시(동문삼색展)를 했던 임영수 작가가 있다. 작품을 멀리 떨어져 보면 진한 파란색으로 한 번에 칠해진 느낌을 준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깊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색 속에 색이 있다. 한지에 동양화물감으로 처음에는 묽게 바르고, 마르면 농도를 더해 또 발라 많은 색이 천천히 덧칠해져 화면에 들어간다. 작가의 파란색이 깊은 이유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좋은 일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최근의 큰 사건들은 나에게 충격이고 아픔이며 슬픔이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정화되어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 언제나 무심히 흐르는 내처럼 맑게 끊임없이 흘렀으면 한다.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욕심인지 모르겠다. 세상사 많은 일을 지우듯 한지 위에 먹과 색을 수없이 칠하고 칠한다. 순수한 색면을 통해 내면의 자유와 숭고함을 이끌어 내고자한다’ - 2016년 어느 날, 작가 임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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