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의 국가디자인] 이 참에 대한민국 산업구조 새 판을 짜자
[허성우의 국가디자인] 이 참에 대한민국 산업구조 새 판을 짜자
  •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9년 08월 21일 17시 1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22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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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길을 걸어온 이래로 경제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위기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와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던 일본이 한국 산업의 주축인 반도체에 타격을 가하면서 그동안 반도체 호황으로 가려졌던 우리나라 경제 산업 펀더멘털의 나약한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예산·법령·세제·금융 등 가용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예산 늘려서 해결될 일도 아닐뿐더러, 주요 소재·부품을 국산화한다고 우리 경제의 장밋빛 미래가 보장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언제까지 우리는 미·중 무역전쟁, 일본 경제보복과 같이 우리나라를 흔드는 대외적 경제 악재가 있을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해야 하나. 이참에 ‘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부위정경(扶危定傾)의 자세로 한국 경제 산업구조의 새판 짜기를 해야 한다.

한국은 지난 40여 년간 제조업을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2차 산업혁명 시대까지 가진 것 하나 없던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주도-재벌중심의 개발체제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주력산업은 질적 고도화보다는 양적 확대에 주력했으며 제품·기술 혁신을 외면한 채 생산에 의존해온 수출 전략은 우리 경제의 혁신을 가로막는 생태계를 고착화시켜 왔다. 상위 10대 산업이 전체 수출 및 생산에서 점하는 비중이 70%이며 수출에서 대기업 비중은 80%에 달하니 대외변동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태생적 한계다.

당장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이 제조 강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자동차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에서 한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독일의 한 싱크탱크는 중국이 제조 강대국이 되기 위한 전략인 ‘중국제조2025’정책에 가장 위협받을 국가로 한국을 지목한 바 있다. 중국이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부품을 스스로 조달하고 완제품 생산까지 마치는 자급자족식 공급망) 정책을 기반으로 첨단기술 분야의 제품까지 국산화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중(對中) 중간재 수출 비중이 큰 한국에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반도체가 중국으로 모두 넘어가지 말라는 법이 있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5G기술을 리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지금이야말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적기(適期)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종 첨단 기술이 융합하며 경계가 사라지고 기존 체제가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대기업 위주의 전략을 고수한다면 한국 경제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다보스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은 “과거에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었지만 이제는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라고 했다. 우리 대기업은 체질적으로 혁신보다는 기존 제품 라인업과 서비스 체계의 공급자형 먹이 사슬에 익숙해져 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직적 하청구조하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 아이디어 가로채기 등 불공정거래 관행이 만연한 우리 경제 생태계에서는 구조적으로 창의적 혁신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대기업 스스로 황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고 덩치가 큰 대기업보다 작은 물고기지만 재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 제제로 불거진 부품 · 소재 산업 육성 정책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정부가 4차 산업의 정책방향의 틀을 바꿀수는 없다. 부품·소재 산업과 관련하여 정부가 주도적으로 앞장서지 말고 기업에 맡기자. 어차피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한번은 뛰어 넘어야 할 장벽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중심 경제발전을 이뤄 온 독일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서 지난 2011년 세계 최초로 ‘인더스트리 4.0’을 내세우며 4차 산업혁명에 뛰어들었다. 인더스트리 4.0은 독일 제조업이 직면한 문제를 ICT 기술을 접목하여 대응하겠다는 정책이다. 인더스트리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핵심은 대기업-중소기업간 상생 생태계에 있다. 진정한 상생 생태계는 산업의 가치사슬 위의 모든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 및 협업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급하다고 후진하지 말자.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4차산업을 국가 경제를 재도약 시키는 무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개인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혁신적인 수준의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정책 대상도 특정 기업 혹은 산업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또 다시 우리에게 일본 경제보복보다 더 무서운 대외적 악재가 엄습하지 말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살아 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갑각류가 죽음을 각오하고 탈피(脫皮)를 하듯 성장의 과정에는 늘 고통이 동반한다.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한 혁신 과정에 수많은 혼란과 갈등이 수반되겠지만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이 합심한다면 대한민국이 세계 속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5G 4차산업혁명’ 설명하는 유영민 장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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