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를 걷다 보면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경주 뿐 아니라 서울의 고궁과 전주 한옥마을 등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비슷하다. 문화재청이 지난 2013년 10월부터 ‘궁·능 한복 착용자 무료관람’ 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 한복 착용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와 젊은이들 사이에 인증사진 찍기가 유행하면서 독특한 한복 패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녀노소, 외국인들까지 한복 맵시를 뽐내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는다. 한복 대여점에서는 생활한복 뿐 아니라 화려함을 강조한 퓨전한복·테마한복 등을 빌려준다. 임금이 입는 곤룡포에서부터 기생이 입던 어우동 복장까지 다양하다.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는 한복을 보면 ‘저런 복장을 한복이라 할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퓨전’이지 우리 한복 고유의 멋을 깡그리 무시한 정체불명의 옷이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색상에 안데스 원주민이 입는 전통의상 형태, 심지어는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를 연상시키는 옷들도 있다. 재질 또한 고유 한복에 쓸 수 없는 중국제 저질 옷감을 쓴 것이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한복의 전통 디자인 훼손이다. 한복의 가장 큰 특징은 평면재단인데 이를 지킨 옷을 찾아볼 수 없다. 평면재단은 몸의 치수를 재서 치수에 따라 옷의 각 부분의 본을 뜬 다음 옷감을 마름질해 짜 맞춰 바느질 하는 제작 방식이다. 입체재단하는 양복에 비해 넉넉하게 마름하기 때문에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고 우아한 기품이 흐른다.

하지만 대여하는 한복은 어깨를 부풀리고, 코르셋 모양의 허리에 리본을 묶는가 하면 치마 속에 후프를 과도하게 넣어 숫제 서양 드레스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옷에다 과도한 금박 은박은 물론 각종 구슬 장식까지 달아 도저히 한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판을 치고 있다.

최근 경북도가 ‘남북 한복·자수문화 교류방안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장차 한복·자수문화를 남북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할 것이라 한다. 한복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좋지만 먼저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가 깃든 ‘한복 정체성’부터 찾는 것이 급선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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