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깜냥껏 허리를 힘껏 구부렸다 편 자벌레가
나뭇가지 속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뭇가지 속으로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찍찍거리는 시계 소리 들린다

마른 풀 향기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소리도 들리고

흐른 그늘 밑에 가부좌 틀고 앉아
단전 호흡하는 양철 물고기 숨소리도 들린다

귓바퀴도 없고 귓구멍도 없는
자벌레 귀가 안 들리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은

평생을 오체투지하며 꿇어 엎드려
무릎이 다 닳아 뱃가죽으로 기어가기 때문이다




<감상> 자벌레가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유는 참선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곧 다리는 퇴화퇴고 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선승(禪僧)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차원을 넘어서서 소리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볼 줄 안다. 소리는 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후각인 마른 풀의 향기와 풍경(風磬)에 매달린 시각적인 물고기와 어우러진다. 백석 시인의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山비」)라는 시구에서도 자벌레는 빗방울 소리에 날아가는 멧비둘기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 볼 줄 안다. 결국 자벌레는 미세한 소리에 어우러진 향기와 모양을 볼 줄 아는 관음(觀音)의 경지에 이르고 만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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